인류는 예부터 식물 동물 미생물 등을 사육 재배 육종 등을 통해 생명의 신비에 도전해 왔다. 20세기에는 인간 게놈지도를 완성하고 유전자 기능이 속속 밝혀짐에 따라 생명의 신비에 대한 새로운 시야가 형성되는 한편 생명윤리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1970년 미국의 의사들은 시험관아기를 처음 출생시켰다. 당시 그것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격렬한 찬반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지금은 불임클리닉이 보편화된 기술로 확립돼 있다. 지난 97년 영국의 과학자들은 복제양(羊) '돌리'를 생산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포유동물이 교배에 의하지 않고 암컷끼리의 체세포와 난자의 핵치환을 통해 복제대상과 똑같은 양이 출산된 것은 기존의 세포분화이론을 뒤집는 것이었다. 반대론자들은 '이는 신의 영역인 생명창조에 관여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인간복제의 길을 열어 가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된 것은 없다. '돌리'복제의 경우 실험과정에서 99.8%가 실패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복제인간의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그렇더라도 어떤 상업적인 동기가 개입돼 인간복제를 시도할 수는 있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면 바로 이 부분이 될 것이다. 작년부터는 배아(胚芽)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만능세포로 불리는 '줄기세포'는 각종 장기(臟器)나 신체조직으로 성장(분화)하기 전 단계에 있는 세포인데,과학자들은 이것을 활용하면 알츠하이머 당뇨병 백혈병 등 난치병 치료와 환자의 손상된 장기나 조직 골수 등을 거부반응 없이 재생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문제는 줄기세포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배아가 파괴되기 때문에 이는 낙태와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이 대두된다. 그러나 연간 수백만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낙태에 우리나라만큼 관대한 나라는 별로 없다. 또 최근 식약청에서 시판이 허용된 응급피임약은 사후에 수정란의 자궁내 착상을 저해하는 작용으로 피임효과를 내는데,이 또한 낙태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모의 건강 또는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 등을 법으로 허용한 것이다. 이에 비추어 치료목적의 배아줄기세포연구는 허용되어야 할 이유와 명분이 앞의 경우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현재 추진중인 '생명윤리법시안'에서는 배아복제연구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국내 연구진에서 소(牛)의 난자에 사람의 세포핵(귀 피부세포)을 이식해 배아를 복제하는 실험이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학계에서는 포유동물의 체외수정이나 수정란 발생연구를 위해 햄스터 등의 난자에 사람의 정자를 수정시키는 등 이번과 비슷한 연구를 30여년 전부터 수행해 오고 있다. 이번 경우 소의 난자에 수정한 배아는 사람 자궁에 착상시켜도 개체가 태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복제인간 출현가능성 등의 윤리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생명공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 과학적 진보에 걸맞은 생명윤리를 담보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거나,지나치게 정서적으로 윤리문제에 접근해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현재 추진중인 생명윤리법시안에는 학계의 주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복제된 배아를 고의로 자궁에 착상시키면 복제인간이 탄생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연구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고발생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동차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배아복제의 자궁내 착상만 금지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 최소한의 범위는 '인간복제를 직접 시도하는 연구'의 금지다. 나머지 사항은 아직 급할 것도 없고 입법의 실익도 없다. 희박한 '잠재적 위험'을 놓고 선진국보다 훨씬 엄격한 입법을 통해 연구활동을 위축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필요하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