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가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들어 선심성 정치논리로 경제흐름이 왜곡돼선 안된다고 촉구하고 부당한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데 이어 4일엔 대선 후보들의 공약도 평가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선심성 인기영합주의를 경계하고 반시장경제적 정책추진을 철저히 배격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5단체가 발표한 '금년 국가대사에 즈음한 경제계 제언'은 잇따른 선거정국 속에서도 일관된 시장경제주의의 원칙이 무녀져서는 안된다는 재계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올 한해의 정책적 판단이 향후 5∼10년의 국가경제를 좌우하게 된다는 심각성을 강조한 대목이기도 하다. 경제5단체장들이 발표문을 통해 "정치권은 올해 각종 제도개선 추진과 대선공약 마련시 경제회복의 기로에 있는 현실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국가 백년대계의 안목으로 임해 달라"고 촉구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만일 단기적인 안목으로 인기에 영합하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구태가 재연된다면 우리 사회 발전과 경제의 미래가 더욱 암담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바탕에 깔고 있다. 재계는 특히 "올해 대선을 기점으로 과거의 불합리했던 정치행태를 일소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을 개발하는 정치선진화의 원년으로 삼아 선거에 임해 달라"고 거듭 주문했다. 과거의 인기영합주의를 배격하기 위해 재계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검토.평가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후보들의 공약에 시장경제주의적 제도개선 사항이 담기도록 유도해 나가겠다는 포석이다. 경제5단체의 이번 발표는 재계가 올해 대선에서 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정치활동을 공식화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재계는 지난 2000년 '4.13 총선'을 앞두고도 정치활동 전담창구인 의정평가위원회를 통해 총선후보들에 대한 평가작업을 벌였으며 97년에도 대선후보들의 공약평가사업을 추진했으나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재계의 이런 움직임에는 선거와 월드컵 분위기를 틈탄 이익단체들의 집단이기주의에 쐐기를 박자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5단체장의 '경제계 제언'은 올들어 개별 경제단체가 논의해온 '경제분야에 대한 정치권 외풍 차단'을 범경제단체 차원에서 추진하겠다는 뜻도 담고 있다. 전경련은 1월 회장단 회의를 통해 정치논리에 의해 경제정책이 왜곡돼선 안된다고 촉구했고 2월 정기총회에서는 부당한 정치자금 제공을 거부하고 선심성 정책 배제를 촉구하는 '기업인의 결의'를 채택했다. 중견기업연합회도 최근 정기총회를 통해 선심성 공약남발 자제를 촉구했다. 이번 공약평가 작업의 추진주체는 경제5단체를 비롯해 60여개의 업종별 단체로 구성된 '경제단체협의회'다. 경총 산하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경단협을 통해 대선후보들의 공약 기획 단계에서부터 반시장경제적 정책추진을 막는 등 경제계의 입장을 적극 반영해 나갈 방침이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