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그의 방으로 불쑥 들어갔을 때, 마침 그는 「마태오 수난곡」 속의 알토 독창 '아, 골고다'를 쓰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편안하고 혈색도 좋았던 그의 얼굴이 완전히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잿빛으로 변한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와 그의 방문 옆의 계단에 앉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음악을 듣는 이들이 그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며 작품을 썼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요" 독일의 대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두번째 아내인 안나 막달레나 바흐는 우연히 목격하게 된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작곡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바흐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장면을 상상하며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로맹 롤랑 등 수많은 문필가들에 의한 전기가 있는 베토벤과는 달리 바흐의 생애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은 편이라 우리는 그의 음악을 통해서만 바흐의 위대성과 창조적 역량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안나 막달레나가 쓴 「내 남편 바흐」(김미옥 역. 우물이 있는 집)는 이위대한 작곡가가 얼마나 큰 창작의 고통에 시달렸는지, 또 11명의 아이들을 부양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활고에 시달렸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 이 책은 바흐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가치를 갖고 있다. 바흐가 첫번째 부인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13년만에 사별하고 난 뒤 맞아들인 두번째 아내 안나 막달레나는 재능있는 소프라노 가수였으며 바흐보다 15살이나 연하였다. 가정적이었던 바흐는 그녀를 몹시 사랑했으며 안나 또한 남편을 존경함과 동시에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서도 항상 평화로운 가정을 꾸려나감으로써 바흐에게 평안과 위안 속에서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아내에 대한 바흐의 사랑은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에도 잘나타나 있다. 바흐 사후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안나 막달레나의 글에는 바흐와의 만남과 결혼, 행복하면서도 신기한 일 투성이었던 신혼시절, 바흐가 성 토마스교회의 칸토르(합창장)로 재직하던 라이프치히 시절과 순탄치 않았던 만년, 바흐의죽음 등이 세밀한 필치로 묘사돼 있다. 모두 다 위대한 음악가 바흐의 인간적 면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실은 바흐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의 아내조차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바흐'는 심오한 존재였다. "오랜 결혼생활 동안 그는 결코 완전한 나만의 바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왠지모를 거대한 힘이 가슴에 밀려와 묘한 두려움으로 나를 떨게 만들었습니다. 표현할 수도 없고, 이유조차 알 수 없는 그 느낌은 그의 피를 나눈 아들이나 딸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감정은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쌓여서 비밀스런 두려움이 되었고, 우리의 사랑으로도 완전히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는벅찰 정도로 너무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안나의 이 고백은 바흐 음악의 심연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바흐가 세상을 떠나고 사람들이 그를 잊어갈 때 이미 바흐 음악의 위대성과 불멸성을 간파하고 있던 안나 막달레나는 자신의 책이 훗날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을 예견하고 썼다. 안나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아 오늘날 바흐 연구가들 뿐 아니라 바흐 음악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가장 중요한 문헌이 되고 있다. 바흐와의 사이에서 13명의 아이를 낳은 안나 막달레나는(바흐는 첫 부인에게서는 일곱 자녀를 보았다) 바흐가 사망한지 10년 후 그의 곁으로 갔으며 '공적인 자선의 도움'으로 공동묘지에 묻혔다. 272쪽. 8천800원.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