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 게이트''의 후폭풍이 국내 증시를 강타했다. 30일 주식시장은 외국인 투자자의 전방위 매도공세로 급락했다. 외국인은 거래소와 코스닥 시장에서 매도 우위를 보인 것은 물론 선물까지 대거 내다팔아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외국인의 매도 공세는 미국 증시의 불안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전날 미국 증시에서는 엔론 사태가 확산 조짐을 보이면서 다우 나스닥 S&P500 등 주요 지수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엔론 사태는 내구재 주문과 소비자신뢰지수 상승 등 경제지표의 호전도 희석시켜 버렸다. 국내 증시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은 전날에 이어 반도체와 금융주를 매도해 주가의 곤두박질을 부채질했다. 삼성전자를 6백15억원 어치 팔아치운 것을 비롯 삼성전기 국민은행 신한지주 대신증권 현대증권 등을 주로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이날 거래소시장에서만 2천2백억원이 넘는 순매도를 보였다. 지난 15일(2천9백44억원 순매도)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 수급 악화 =하이닉스반도체 협상결렬설과 메디슨 최종부도 처리가 터져 나온 상황에서 해외 악재까지 겹쳐 외국인의 매도 강도가 거세졌다.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이 필요한 시점에 단기적으로 수급이 악화돼 지수 하락폭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외국인의 매도공세에 맞설 만한 투자 주체가 없다는 현실도 심리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고객예탁금이 11조5천억원대로 늘어나 개인의 매수여력은 많았지만 향후 장세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주도주보다는 주변주로 매기가 몰려 응집력이 없는 상황이다. 국내 기관의 경우 주식형 수익증권 잔고가 늘어나면서 매수세를 보이고 있지만 외국인에게 맞설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결국 시가총액 비중이 큰 외국인의 움직임에 따라 지수가 춤을 출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 셈이다. ◇ 외국인 왜 파나 =미국 시장의 불안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9.11 테러 사태 이후 전세계 시장에서 한국 증시가 가장 많이 오른 만큼 차익실현 욕구가 강한 상태에서 미 증시의 급락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간의 협상 결렬설이 터져 나와 구조조정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라든 데다 메디슨이 좌초하면서 벤처기업의 난맥상이 다시 부각되는 등 국내적인 악재도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외국인이 관망세나 매도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추세적인 매도세로 돌아선 것은 아니라고 전망하고 있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는 "미국 증시가 조정기에 들어간 데다 한국 증시가 작년 가을 이후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올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차익실현 욕구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순매수 기조가 추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굿모닝증권 이근모 전무는 "외국인이 확실히 방향을 정해놓고 주식을 내다파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실한 신호가 없는 상태에서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그러나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을 팔고 나면 마땅히 살 만한 곳이 없다"면서 "단기자금을 제외한 중.장기 자금들이 움직일 만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