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은 당내 민주화세력의 ''적통''임을 자임하는 원칙주의자다. 민청련 의장을 역임한 김 고문은 단 한번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민주화를 위한 외길을 달려 왔으며, 정계 입문 이후에도 줄곧 당내 개혁의 선봉에 섰다. 김 고문이 지난 주말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현 정부 개혁작업이 안고 있는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주체세력의 신뢰 상실"이라고 지적한 것도 그의 이런 행보와 무관치 않다. 그는 "개혁의 주체는 도덕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대담 = 김영규 < 정치부장 > ] ----------------------------------------------------------------- -민주당의 향후 정치일정과 대선후보 경선 룰이 확정됐습니다. 그 결과에 만족하십니까. "자부심을 느낍니다. 정치일정이 합의 처리됐고 제도적 쇄신을 이끌어내는데 저도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습니다. 대선후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일반 국민을 추첨으로 결정하는 것은 온전한 국민참여 경선제가 아닙니다. 또 지방선거 이후 대선후보를 선출하자는 제의가 ''4월 경선론''에 밀려났습니다.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지방선거를 치르다 그 결과가 나쁠 경우 당 대선전략이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할 경우 상당한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정당 민주화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동일한 정책노선을 가진 정치세력의 집결입니다. 지방선거 이후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의 원칙에 동의하는 모든 정치세력을 집결시키면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을 훨씬 높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지방선거에 패배할 경우 대선후보를 내세워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과 그런 주장으로 정치적 이득을 본 사람들은 명백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인제 상임고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게 나옵니다. 이를 극복할 대책은 있으신지요. "지역 연고가 없는 것이 지지율을 높이는데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재야운동을 오래 해서 비현실적이고 비타협적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97년 대통령선거에서 TV토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국민경선제가 선거혁명을 가져올 것입니다. 국민경선제는 전국 각지를 순회하면서 치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연설회와 토론회가 열리면 비전을 갖고 있는 김근태가 그 한가운데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당내 경선은 최소 10억원, 대선은 4천억원이 들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엄청난 선거자금을 어떻게 조달하시겠습니까. 또 경선자금 수수내역을 공개할 용의는 있으신지요. "기업에 경영 투명성을 요구해온 정치권이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하면 반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대선후보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대선후보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치자금은 선관위에서 투명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다음 정권에서 또다시 각종 게이트가 잇따라 터져 나올게 뻔합니다. 대통령직을 물러난 후 돈 걱정을 하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국의 경쟁력은 점프할 것입니다" -재계에서는 ''5년 주기 기업수난사''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바뀌는 5년마다 새로운 규제정책이 등장해 기업들의 의욕을 꺾어 왔다는 게 그 요지입니다. 때문에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감합니다. 5년마다 새로운 대통령이 이벤트적으로 규칙을 제정할 경우 말할 수 없는 손실이 옵니다. 5년 단임제는 장기 독재에 넌더리난 국민들의 요구였습니다. 이제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로 옮겨갈 때가 됐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나 대선에서 국민투표에 부쳐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한다는 식으로 나라의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대통령말씀''과 ''국민정서법'' 등 두개의 법이 있다고 할 정도로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합니다. 21세기는 대통령의 모습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문제는 집권 초기에는 너무 강한 제왕적 대통령이고, 후반기에는 수습할 수 없는 레임덕이 와서 실패한 대통령이 된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이 지역주의에 기초해 뽑히기 때문이죠. 승리한 대통령과 함께 하지 않은 지역은 집단적으로 저항하고 반발합니다. 국민투표로 뽑힌 전직 대통령 두 분 다 이런 점에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개인이나 집단이 무서운게 아니라 규칙이 무서운 사회가 돼야 합니다. 국가를 기업처럼 경영하는 CEO 대통령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김 고문께서는 당내의 대표적 개혁주자입니다. 그러나 현 정부의 개혁속도가 현실성 없이 빠르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개혁의 속도보다는 개혁零섟?국민적 신뢰를 광범위하게 얻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옷로비사건과 각종 게이트들이 불거지니까 ''국민들은 고통을 분담하는데 당신들은 뒤에서 재미보는 것 아니냐''라는 배반감을 갖는 데 문제의 근원이 있습니다" -김 고문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기업도 지속적인 구조조정 등을 통해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세계적 기업들과의 경쟁력을 높인 이후에 개혁을 추진하자는 재벌의 입장을 잘 압니다. 냉전체제하에서는 이런 주장이 통용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질서를 주도해 나가는 미국의 힘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재벌을 모욕하자는게 아니라 옛날로 돌아가선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재벌도 세대교체가 필요합니다. 오너들의 마인드가 바뀌거나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러나 빅딜 등 정부가 밀어붙인 개혁정책으로 부작용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 아닌가요. "워싱턴포스트지의 한 기자가 최근 ''징벌''(Chastening)이라는 책에서 미국이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빌미로 ''한국 길들이기''를 시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 등 미국 경제팀이 미셸 캉드쉬 IMF 총재에게 한국의 경제구조를 재편하도록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지요. 결국 한국은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고, 초긴축재정 초고금리 정책을 강요당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빅딜과 같은 정부의 응급조치가 없었더라면 한국경제는 죽었을 것입니다" 정리=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