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D램 업계의 구조 재편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하이닉스반도체와 협상을 추진해 왔던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도시바의 미국 D램 공장 인수를 전격 발표한 속내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도시바와 D램 합작회사 설립을 추진해 왔던 인피니언이 협상결렬을 선언한 것도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다. 외톨이로 남은 인피니언이 생존을 위해 어떤 카드를 내미느냐에 따라 그림은 또 다시 달라질 수 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2위권 이하의 D램 업체들이 한편에서 제휴협상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별도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D램 업계의 합종연횡이 어떤 식의 결말을 맺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 마이크론의 속셈 =마이크론은 도시바의 미국공장 인수로 일단 D램 업계 재편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게 됐다. 지난 1.4분기(9~11월)중 예상보다 많은 2억6천6백만달러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지만 합종연횡에서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와의 협상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진행시키기 위해 도시바를 끌어들였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도시바의 미국공장은 월 5천장의 웨이퍼를 가공할 수 있는 규모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지만 도시바와의 제휴를 D램 사업 전체로 확대할 가능성이 남아 있어 마이크론은 하이닉스에 덜 의존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인피니언이 협상결렬을 선언, D램 사업을 포기하기로 한 도시바도 현재로선 마이크론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마이크론은 하이닉스와 협상을 시작하기 오래 전부터 도시바 공장인수를 검토해 왔기 때문에 두 사안은 별개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도시바와 인피니언의 협상중간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뛰어들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 인피니언의 대안 =독일의 인피니언이 제일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됐다. 도시바와의 협상에서 현금을 투입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업계 재편에서 소외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인피니언은 이번 협상과는 관계없이 다른 D램 업체들과의 제휴 가능성이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인피니언 자체가 자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상황이어서 대등한 제휴관계를 원할 업체가 없을 것으로 애널리스트들은 보고 있다. 다만 하이닉스와 마이크론간의 협상전망이 불투명해질 경우 인피니언의 요청에 응할 회사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 하이닉스의 비상대책 =하이닉스는 일단 마이크론과의 협상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협상결렬설이 불거졌을 때 신국환 하이닉스반도체 구조조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도시바 건이 하이닉스 협상에 큰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며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하이닉스 구조조정특위 관계자들은 마이크론이 도시바의 미국공장 인수 이후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을 내놓을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공장인수라든지 대대적인 감산과 설비축소를 요구할 경우 협상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신 위원장이 삼성전자나 인피니언과 제휴를 논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같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