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외국인으로는 처음 국내 은행장으로 취임했던 호리에 제일은행장이 취임 1년 9개월만에 중도하차키로 했다는 소식은 은행경영과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의 교체배경을 두고 여러가지 설이 나오고 있으나 3년임기를 절반이나 남기고 전격 교체됐다는 점에서 자진사퇴 형식을 빌린 문책성 교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책사유에 대해서는 대주주인 뉴브리지측이 입을 다물고 있어 하이닉스·흥창 등에 대한 부실여신 때문인지 총체적 경영성과 부진 때문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경영실책을 저지르거나 경영성과가 부진하면 대주주가 즉각 책임을 묻는 미국식 책임경영의 전통이 그대로 적용된 결과라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어떻게 보면 개인차원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 호리에 행장의 전격 교체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제일은행과 호리에 행장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잘 알려진대로 제일은행은 외환위기 와중에서 뉴브리지캐피탈에 5천억원에 매각된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소유은행이다. 그후 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되자 이를 두고 바가지를 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바로 그 은행이다. 여기에다 호리에 행장은 국내 최초의 외국인 행장답게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거부하는 등 관치금융에 맞섰고,소액예금 통장에 수수료를 부과해 서민들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아울러 4백12만주나 되는 주식을 저가에 매입할 수 있는 스톡옵션을 독차지해 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국민들의 호리에 행장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으나 그의 등장과 퇴장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관치금융 청산과 책임경영체제 확립을 위해서는 은행에 확실한 주인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호리에 행장이 우리 국민정서와 무관하게 관치금융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뉴브리지라는 주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아울러 책임경영체제 확립을 위해서는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확실한 주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이번 호리에 행장의 전격 교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른 은행들이 지난 수년간 관치금융이나 부실여신으로 제일은행보다 훨씬 많은 손해를 주주에게 끼쳤으나 어느 은행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적이 있는가. 정부이외에는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뚜렷한 주인이 없기 때문에 관치금융이 계속되고 책임경영체제 확립이 요원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