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가공스러운 테러'가 11일 실제 현실로 나타나면서 미국이 대공황에 빠졌다.


그것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과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지배에 의한 평화)의 총본산인 펜타곤(미국 국방부 청사)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은 충격을 넘어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간 여객기를 공중납치한 후 자살 공격을 감행하는 기상천외한 테러 수법에 누구나 혀를 내두르고 있으나 `진주만 폭격'에 버금가는 위기를 맞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처신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아침만 해도 동트기전에 일어나 골프장에서 조깅으로 땀을흘린 뒤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의 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모아 놓고 교육 개혁안을 홍보하는 등 한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초대형 테러 급보에 접하자 그는 흔들리는 듯한 인상을 보였다.


플로리다주의 모든 일정을 중단한 채 루이지애나주의 공군기지를 거쳐 네브래스카주의 공군전략사령부로 갔다가 다시 워싱턴으로 향하는 등 허둥댔으며 루이지애나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위기의 규모에 압도된 듯 당황한 모습을 비치기도 했다.


물론 그 와중에 이번 사태를 '국가 재난'으로 규정하고 국내외의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렸으며 테러 주모자들은 추적,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선언하는 한편 국가안보팀과 원격회의를 갖는 등 나름대로 부지런히 움직였으나 백악관의 안전 때문에 우왕좌왕했다니 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하루 종일 테러 관련 소식을 전하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은 뉴욕과 워싱턴이 불타는 장면을 지켜보며 부시 대통령이 안전상의 이유로 백악관으로 귀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자 "어떻게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부시 대통령은 168명이 희생된 1995년의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폭탄 테러 당시 의연하게 대처했던 그의 전임자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비유되면서 자칫하면 인기가 폭락할 조짐까지 엿보이고 있다.


어쨌든 부시 대통령은 집권 8개월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은 분명하며 이를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그의 정치 생명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초대형 테러에 대해 아무런 사전 인식도 없었던 정보력 부재와 테러리스트가 안방처럼 드나드는 허술한 공항 보안 체제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더욱이 140만 미군의 중추신경이나 다름 없는 국방부의 영공이 뻥 뚫려 있었던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미국인들은 일단 외환이 닥치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굳게 뭉치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도 부시 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 1998년8월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와 케냐 주재 미국대사관이 이번 사건의 배후로 유력시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해 공격받자 클린턴 대통령이 불과 며칠만에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을 미사일 공격으로 보복한 전례에 비추어 부시 대통령의조치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들고나올 카드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며 이번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중동 정책에도 상당한 변화가 점쳐지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