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텐진(天津)공업단지에 자리잡은 삼성 모니터 공장.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듯한 젊은 남녀 직원들이 생산라인 앞에 앉아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다. 제품 하자여부를 검사하고 있는 직원은 눈초리를 바짝 세웠다. 라인 끝에는 막 생산된 모니터가 지게차에 실려 창고로 흘러가고 있다. 어수선한 듯 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분위기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모니터는 연간 약 4백만대. 절반은 중국시장으로, 나머지 절반은 해외로 수출된다. 모니터 생산에 관한 한 중국은 '종주국'이라고 부를만 하다. 세계 시장공급량의 40%정도를 생산한다. 우리나라의 삼성과 LG, 네덜란드의 필립스, 대만의 AOC와 EMC 등 세계 시장점유율 상위 업체가 모두 중국에 터를 닦았다. 중국 모니터 업체들이 작년 해외에 수출한 모니터는 약 3천3백6만대.34억달러에 달하는 달러를 벌어들였다. 모니터뿐만 아니다. TV 세탁기 에어컨 등 중국이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제품은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세계 복사기의 10대 중 6대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딱지가 붙어있다. 섬유 완구 등은 세계시장을 정복한지 오래 전이다. '세계공장' 중국의 제조업 흡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99년 이후에만 도시바(비디오) 산요(DVD) 샤프(에어컨) 마쓰시타(전자레인지) 미놀타(복사기)등의 일본 업체들이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이전했다. 일본 통산성은 이를 두고 "21세기 세계의 공장 중국은 일본을 밀쳐내고 중심국가로 등장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가전대국 일본이 중국에 무릎을 꿇었다. 세계적인 제조업체들 사이에서는 '옮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중국으로 옮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흡인력의 근원은 간단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도저히 중국의 생산성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의 제품생산은 일반적으로 20∼30%의 원가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원가 뿐만은 아닙니다. 직원들의 작업 충실도가 높아 불량률이 서울보다 오히려 낮습니다. 지방정부는 막혀준 것을 시원하게 뚫어줍니다" 광둥(廣東)성 둥완(東莞)에 자리잡은 삼성SDI공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세계공장'중국은 하청 공장에 그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많은 외국 첨단기술 업체를 끌어들인 중국은 첨단기술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은 외국기업에 시장을 호락호락 내주지 않았다. '시장 줄게 기술 다오'라는 식으로 기업을 끌어들였고 각 기업들은 기술을 중국에 떨궜다. 인텔 IBM 등 다국적 기업이 중국 주요 도시에 설립한 70여개 연구개발(R&D)센터에서는 중국 젊은이들이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첨단제품 수출액은 약 3백70억달러.아직 전체 수출액의 15%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는 그러나 전년도에 비해서 무려 50%나 증가한 수준으로 중국 첨단제품의 세계 시장 파괴력을 금방 알 수 있다. 시장과 기술을 맞바꾸겠다는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중국 국무원(정부)의 싱크탱크인 국무원발전연구센터(DRC)는 최근 'WTO가입과 대외개방 신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첨단기술 개발을 통해 산업의 고도화를 이루는 데 산업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앞으로는 외자유치를 선진 기술 도입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임가공 및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지금의 생산방식에서 자기설계방식(ODM) 자기지식재산권제조방식 등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술을 배울 게 없는 기업이라면 아무리 돈을 싸들고 와도 외면 받는 날이 멀지 않았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기술과 노동이 조화를 이룬 '기술노동밀집형'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브레인을 갖춘 세계공장',그게 중국의 야망이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