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프라자호텔의 한 객실. 대한항공의 심이택 사장 등 회사측 대표 3명과 조종사노조 교섭대표인 민주노총의 양한웅 공공연맹 부위원장 등 노조측 3명이 비밀리에 마주 앉았다. 막후협상을 위해서였다. 10일 이상 계속된 노사협상 테이블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날 노조측과 첫 대면한 심 사장은 "회사는 임금협상과 관련된 형사 고소.고발을 취하하겠다"며 노조측의 쟁점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같은 시각 중앙대에선 파업 중인 조종사들이 붉은 머리 띠를 매고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정부 관료들은 "고소.고발 문제는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이번 기회에 밀약 등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대한항공 은 △임금협상과 관련된 민.형사 고소.고발 취하 △외국인 조종사의 감축 등을 약속하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항공대란을 초래했던 대한항공 노사분규가 파업 이틀만인 13일 밤 타결되기까지에는 '일이 시끄러워지면 노조측의 요구를 뒤에서 들어준다'는 나쁜 선례를 또다시 남겼다. 노사협상에서 원칙을 정하지 않고 일단 분규를 막고보자는 생각으로 문제를 편의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자세는 사용자측이 개선해야 할 점이다. 구조조정 문제로 시끄러운 공기업의 임원들은 노조원을 대상으로 공공부문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설득하기보다는 "정부가 시켜서 하는 일인데 어쩔 수 있느냐"며 핑계를 댄다. 노조가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최고경영진의 약점을 잡아 이면합의를 이끌어내는건 '식은 죽 먹기'다. 이런 일이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전력기술 담배인삼공사 등에서 벌어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전무는 "노사협상에 임하는 경영진은 소신을 갖고 노조측과 맞서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그렇지 않는 경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오너나 정부의 눈치를 봐가며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분규를 막기 위해 임시방편적인 미봉책을 쓰는 경우 노조성향이 강경이든 온건이든 결국 노사공멸의 길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김 전무는 "노사분규는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며 "기업들엔 독일처럼 노무담당 임원이 전권을 갖고 노조측과 맞서는 노무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진 노사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 사용자가 노동자를 협상대상으로 인정하고 소신껏 협상에 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경영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