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발전은 부족한 부존자원과 자본을 풍부한 양질의 인적자원으로 메우며 이룩했다고 한다.

인적자원의 풍부함은 인구가 많고 생산연령층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지만,양질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우수한 민족자질을 반영한 것인가,아니면 국가나 기업의 적극적 인적투자의 결실인가.

기업 차원의 인적투자는 오늘날 첨단기술산업을 중심으로 활발하지만,산업화 초기 저임에 기반한 가격경쟁력으로 버티던 대다수 기업들에 고려사항조차 되지 못했다.

국가 차원의 인적투자는 산업화 초기는커녕 현재에도 극히 저조해 교육·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얼마전에는 유엔으로부터 한국의 공공교육 투자부족이 저소득층의 인권훼손을 야기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지적을 받았다.

양질의 인적자원이 우수한 민족자질에서 나왔다고 강변할 수 없지만,최소한 인적투자를 중시하는 민족문화에 의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가족 차원에서 이루어진 자녀형제의 학교교육,직업훈련에 대한 지원이 우수한 산업생산인력을 형성시켰다.

특히 산업화 초기에 대부분 산업인력이 이농인구로 채워질 때 이들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농가로부터 조달된 ''향토장학금''은 단순히 돈 몇푼이 아니라 깊은 가족애의 표현이었다.

이에 대한 보은으로서 학업과 노동에의 매진은 당연했으며,충실한 교육훈련과 강한 노동의욕을 갖춘 인력공급이 그렇게 가능했다.

영국 블레어 총리의 이념적 스승으로 불리는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저서''제3의 길''에는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라는 개념이 제시되어 있다.

이는 국가의 사회적 투자가 교육 등 장기적 생산능력기반을 확충하는데 집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으며,한국정부도 적극 동조하는 생산적 복지론에 연계된 정책노선이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사회투자국가 대신에 일종의 ''사회투자가족''이 자녀형제에 대한 적극적 교육·훈련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기반을 확충해 왔다.

산업화 초기에는 농민가족이 이농하는 자녀형제를 통해 이 역할을 수행했고 이후에는 도시 중산층가족을 중심으로 자녀교육을 통해 같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우리의 자산인 사회투자가족이 최근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일부 중산층을 중심으로 더 이상 이곳에서 사회투자가족 노릇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무의미해 차라리 이민이나 가겠다는 분위기다.

자녀교육 문제로 이민까지 불사하겠다는 생각은 우선 학교폭력,교실붕괴,사교육과열,대입혼란 등 교육현실의 일련의 문제들이 너무 심각해 도저히 불안하고 피곤해서 자녀를 여기에 두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집권자가 ''교육대통령''임을 자칭하지만,교육행정은 그 어느 때보다 독선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무원칙하다.

교육담당자인 교사,교수는 관료지배체제의 희생자이기는 하지만,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제시 못하는 무능함을 보인다.

교육과정상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교육투자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 회의감이다.

최근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경제는 인적투자를 소득기반으로 하는 계층을 희생시키고 자산소득자들에게 유리한 구조를 갖게 되었다.

투자한 교육·훈련 자격을 내세워 안정된 고용조건을 보장받던 중산층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열풍 속에 투자비도 못 건지고 직장을 잃으며,신규 대학졸업자들은 실업인구로 자동 편입되는 상황이 한국을 교육투자 부적격국으로 만들고 있다.

여유소득을 주로 자녀교육에 투자해 온 고학력 노동자들이 자신이 겪게 된 직업위기를 자녀의 미래에 투영시켜 보고는 이민을 결심한다.

이곳에서 교육에의 투자과정이 너무 힘들고 투자결과를 확신할 수 없어 이미 수많은 사회투자가족들이 올해 가정의 달을 이국땅에서 보내고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발전의 성격을 따져볼 때,그리고 앞으로 지식기반경제가 유일한 활로임을 인식할 때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체계,나아가 인력활용체계에 대해 인적투자 주체인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근본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changks@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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