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방첩센터(NACIC)가 의회 보고용으로 만든 2000년 연례보고서에서 미국내 산업스파이와 관련된 주요 국가들이 구체적으로 거명됐다.

미국 국가안보위원회(NSC) 산하에 있는 이 센터가 포천지 5백대 기업에 속한 일부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 일본 이스라엘 프랑스 한국 대만 인도 등이 가장 활발히 경제ㆍ산업첩보 활동을 벌이는 국가로 지적된 것이다.

◇산업스파이와 경제스파이법=경제 또는 산업스파이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미 NACIC는 경제스파이에 대해서는 미국 법무부 장관이 내린 정의를 따른다.

이에 따르면 ''민감한 금융,영업 또는 경제정책 정보,보호돼야 할 경제정보,핵심기술들을 불법적이고 은밀하게 노리거나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산업스파이에 대해서는 ''미국기업들을 상대로 비밀정보를 획득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외국 정부나 외국정부의 지원을 업은 외국기업들의 활동''이라고 본다.

이 정의에 따르면 대부분의 적법한 활동들은 스파이에 해당되지 않겠지만 정부와 기업간의 유대관계가 강하다고 미국이 믿는 일부 국가들은 매우 불리할 수 있다.

이들 국가의 경우 기업 활동이라 해도 정부의 지원이 있을 것으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면 언제든 경제스파이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산업스파이 혐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은 다른 국가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법이다.

우리나라를 비롯 일본 독일 등은 기업들의 영업비밀을 부정경쟁방지법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영업비밀 보호만 다루는 별도의 법률과 함께 경제스파이법까지 갖추고 있는 셈이다.

경제스파이법은 작년에 영업기밀을 절도한 혐의로 대만 기업인에게 처음으로 적용됐었다.

◇노리는 기술과 접근방식=NACIC의 이번 보고서는 미국이 자체적으로 분류하고 있는 18개 그룹의 핵심기술들이 외국 스파이들의 표적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빈번한 표적대상이 되는 것은 정보시스템,센서 및 레이저,전자,우주항공 등 4개 그룹에 속한 기술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 기업들이 타국으로 수출하고자 할 경우 적법한 절차에 따른 허가가 필요한 기술들이기도 하다.

NACIC는 또 이들 기술에 대해 외국이 접근하는 방식을 분류했다.

이에 따르면 개인 또는 기업들이 상업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우는 58%로 나타났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을 받고 접근하는 방식은 22%,그리고 정부와 관련된 각종 기관들의 현지 거점들(연구소 대학 등을 포함)을 통한 접근은 20% 정도라고 적시했다.

특히 NACIC는 3월 동향보고에서 한국의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중소기업청 등이 서로 앞다퉈 미국에 개설하려는 각종 벤처지원 사무소 설립 움직임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들 센터가 기본적으로 미국의 기술들을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접근방식이 아니냐고 의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는 이들 센터는 항상 미국 산업스파이의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 보고서가 미칠 영향=이번 보고서가 비록 의회에 제출되는 연례보고서이긴 하지만 과거와 달리 산업스파이 혐의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을 명시적으로 거명했다는 점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특히 이번 보고서가 이들 국가의 첩보활동이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 심각한 위협요인이라고 경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의견을 중시하고 국가안보 강화를 외치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또한 최근 네덜란드 ASM리소그래피의 미국 새너제이 소재 실리콘밸리그룹(SVG)인수와 관련해 의회가 재무부에 승인하지 말도록 압력을 가한 데서도 나타나듯 첨단기술 유출에 대해 우려하는 의회의 움직임에도 힘을 실어 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구체적으로 거명된 국가의 기업이나 정부기관들은 미국내에서의 활동과 관련해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산업스파이를 제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경제스파이법이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