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정부의 관치금융에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은 법 절차를 무시하고 있는 행정부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사법부는 정부가 최근 법정관리제도처럼 사법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책 입안이나 법 제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해왔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내에서 행정부의 이같은 초법적인 태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분위기속에 내려졌다.

사법부 관계자는 이와관련,"행정부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 차원이 아니라 "법 정신"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이를 계기로 기존의 경제정책이나 수립 중인 각종 정책에 대해 법률적인 검토를 충분히 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라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대우채권 환매제한 무효의 파장=98년 8월 대우사태 때 대우채권이 들어있는 수익증권의 환매를 제한한 금융감독위원회의 결정을 무효화한 이번 판결로 금융권은 일대 소용돌이에 휩싸일 전망이다.

정부의 방침으로 인해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이 투신사 등을 상대로 대거 소송 대열에 뛰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환매가 제한된 대우 유가증권은 18조8천7백92억원 규모.계좌수만 1천2백여만개에 이른다.

금융기관들도 소송에 패할 경우 손실분 회수 차원에서 금감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정책차원에서 내린 결정이 도마에 오르게된 셈이다.

이경우 투자자,금융기관,정부 3자가 소송대란에 휩싸일 가능성마저 있다.

<>환매연기 배경=금감위는 당시 "수익증권 환매안정대책"을 전격 발표,대우 회사채나 기업어음(CP)가 들어있는 펀드에 한해 대우의 유가증권이 편입된 비율만큼 환매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이 조치로 환매가 제한됐던 대우 유가증권은 무보증.무담보 회사채 13조4천3백28억원,CP 5조4천6백44억원 등 총 18조8천9백72억원이다.

이는 전체 수익증권 잔액의 7%에 달했다.

금감위가 수익증권 환매연기 조치를 내린 배경은 환매가 한꺼번에 몰릴 경우 투신권이 유동성위기에 빠지고 그로 인해 주식시장과 회사채 시장이 동반몰락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일종의 비상조치로 돈을 투신권에 묶어놔 경제안정을 꾀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이번 판결은 금감위의 이같은 조치가 투자자에겐 효력이 없다는 점을 확인 시켜준 것이다.

정부가 위급한 경제상황을 감안해 긴급조치를 내린다고 하더라도 사유재산권에는 우선할 수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법원의 입장=이번 판결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금감위가 대우채 환매 연기 방침을 발표한 당시 증권 금융분야 전문 변호사들은 이같은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점쳐왔었다.

수익증권 환매를 요구하는 고객들의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법원의 이같은 판결이 잇따라 이뤄지고 있는 것은 최근들어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판결을 내릴 때 철저히 법률에 따른다"는 방침이 섰기 때문이다.

법정관리 화의 등 파산관련법을 다룰때는 이같은 원칙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정책결정 당시의 경제상황을 지나치게 참작하여 판결을 내릴 경우 이로 인해 추후 경제에 더 큰 짐이 될 수도 있는 사례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원칙은 지난해말 서울지법 판사부가 취한 조치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지난해말 공포된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의 일부 조항이 파산 금융기관의 처리에 대한 사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파산관재인으로 예금보험공사나 예보 임직원을 선임토록 규정한 것은 파산관재인을 법원이 임명토록 한 파산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지난해 11월3일에는 정부가 기업퇴출 명단을 발표하자 파산부가 이례적으로 정부 발표의 부당함을 지적한 보도자료를 내 관계자들을 당혹케 만들기도 했다.

파산부는 당시 "퇴출결정은 법원의 고유권한이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퇴출 발표와 상관없이 법원은 법정관리절차에 따라 독자적으로 퇴출기업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