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첫돌에는 무엇보다 먼저 밥그릇과 국대접 수저를 준비한다.

성년이 되어 혼례를 올릴 때 혼수 필수품목의 하나도 반기(飯器)일습이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거의 모두가 개인용 밥그릇 국대접 수저를 따로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이런 관습은 개인존중에서라기보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풍습에서 유래했다.

쌀을 주식으로 하고 반찬을 부식으로 하는 우리의 음식문화는 개화기때 서구문물이 밀려들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기록상으로 서양음식을 처음 맛본 사람은 1883년 전권대사로 미국에 파견됐던 민영익과 그를 수행한 유길준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때 고종은 궁내의 음식에 독약을 넣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싫어도 러시아공사 위베르 부인이 날라다주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

서양음식이 궁중에 들어온 첫 사례다.

일제강점기에 농민들은 콩깻묵 밀기울로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다.

6·25때 피난민들은 미국구호품인 밀가루와 분유,꿀꿀이죽으로 배를 채워야 했던 때도 있었다.

60년대초 식량자급대책으로 ''보리·밀 예찬론''이 등장하고 혼분식 장려정책에 따라 학생들의 도시락검사까지 했던 일이 기억에 새롭다.

라면이 등장한 것도 63년이다.

통일벼가 나와 쌀의 자급시대가 열린 것은 70년대에 와서였다.

79년엔 최초의 패스트푸드점이 문을 열어 햄버거를 선보였다.

80년대는 육류소비가 늘고 우리 식탁이 풍성해지기 시작한 때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은 식생활 서구화의 촉매역할을 했다.

90년대는 음식의 지구촌화가 실현된 시기라고나 할까.

쌀 소비량이 계속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인당 93.6㎏을 소비해 한 사람이 하루에 두공기 정도의 쌀밥을 먹은 꼴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밀 육류 과일 소비량은 크게 늘고 있다.

일본 65.2㎏,대만 58.4㎏에 비하면 아직은 우리가 쌀을 많이 먹는 편이다.

음식은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음식 가운데 국산은 쌀밥과 김치 뿐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무엇보다 쌀농사만 바라보고 사는 농민들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