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께 일이다.

퇴근해 집으로 가니 아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건냈다.

낮에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친구가 남편이 뭐하느냐고 묻길래 "인터넷 사업을 한다"고 하니 친구가 다시 "뭐 인테리어 사업?"이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당시 아내는 남편인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할 때가 제일 난처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 말 그 친구가 전화를 해 "너희 남편회사에 투자를 하고싶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아내가 투자를 원하는 친인척들로부터 전화 시달림을 많이 받았다.

그 땐 벤처기업 사장들이 전화를 꺼놓고 다닐 정도로 "묻지마 투자"를 원하는 주위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불과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요즘 아내 친구들이 전화로 "생활은 궁핍하지 않는지"하며 우리 걱정을 한다고 한다.

아내는 늘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생활비로 살기에 불편함이 없다고 한결같이 대답한다.

이젠 모든 이들이 인터넷에 대해 알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은 곧 망할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변화를 겪는데 불과 5년이 걸리지 않았다.

요즘 언론에선 테헤란밸리의 거품이 꺼지면서 이제 모든 인터넷 기업들이 그 어느 해보다 추운 한겨울 한파를 맞고 있다고 얘기한다.

과연 모든 닷컴기업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한 베짱이처럼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벤처에 대한 투자분위기가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수 인터넷 기업들은 월동준비를 벌써 마쳤다.

개미처럼 미래를 준비한 닷컴기업들은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월동준비를 마친 닷컴기업들은 속도, 비용절감 등 인터넷의 장점을 잘 활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터넷은 이전 어떤 매체보다 의사(Communication)나 정보(Data)의 전달속도를 빠르게 하며 여기에 드는 비용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만든다.

또 기존 사업들과는 달리 사회 전체에 파격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라디오나 기차가 하나의 산업줄기를 형성했다면 인터넷은 의료, 교육, 금융 등 거의 모든 실생활을 사이버 세상에서 새롭게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있는 닷컴기업의 또 다른 특징은 인터넷 발전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해 제공했다는 점이다.

인터넷 사업의 초기에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장비업체가 시장을 주도했다.

미국의 시스코나 인텔 그리고 썬마이크로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인터넷 관련 솔루션 업체가 호황이다.

인프라가 정비되면서 솔루션 업체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새로운 사이버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종 솔루션들이 "BtoC" "BtoB" 등 갖가지 현란한 용어로 포장돼 나온다.

그러면 다음은 무엇일까.

당연히 인터넷 서비스 업체다.

인프라와 솔루션들이 갖추어지면 다양한 서비스 분야가 꽃을 피우게 된다.

대표적으로 의료, 금융, 교육, 오락, 각종 상거래 등이 인터넷이 가져온 변화에 포함될 분야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인터넷을 이용해 가정생활이나 회사생활을 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오락 위주에서 이제는 정보수집이나 물건구매 등으로 확장돼 가고 있는 것이다.

상품구매든 유료 콘텐츠 이용이든 아니면 유료 서비스든 인터넷을 통한 지출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이는 향후 인터넷 서비스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증거다.

현재 테헤란밸리의 건실한 인터넷 기업들은 여전히 바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묻지마 투자"를 기반으로 돈놀이를 한 "거짓 벤처"가 아니라면 말이다.

지금 많은 벤처들은 인터넷 관련 장비나 솔루션, 서비스 유료화 등 새로운 비즈니스 개척을 위해서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왜냐하면 인터넷이란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산업이 아니고 새로운 세계이기 때문이다.

yshan@keb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