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매각문제가 꼬이면서 IMF사태를 몰고 왔던 3년8개월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철강업계는 한보철강을 인수하겠다고 본계약까지 맺었던 미국 네이버스 컨소시엄이 대금 납부시한을 넘긴 것으로 볼 때 매각 자체가 물 건너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채권단은 네이버스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이지만 본계약서에 ''파기시 제재조항''을 두지 않아 무방비상태에서 포드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대우차의 재판이 될 공산이 크다.

◆채권단 반응 및 대응=네이버스가 매각대금을 보내 오지 않았지만 네이버스와의 매각협상이 ''무산''된 것은 아니라고 한보철강 채권단 관계자는 강변했다.

9월30일이라는 시한은 서로가 이행전제조건을 완료키로 한 시점일 뿐이라는 얘기다.

송경호 자산관리공사 이사는 "한보철강 매각을 위해 네이버스에 약속했던 전제조건을 지난 9월말까지 완료했다"며 "이제 네이버스측이 돈을 넣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채권단측은 네이버스가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끌면서 인수가격을 낮추려는 속셈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7조원을 손실처리하면서 4억8천만달러에 매각키로 결정했다"며 "가격이 안 맞으면 다른 인수대상자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이번주 전체 회의를 열고 대금 납입시한을 한 달간 연장하되 제3의 매각대상자를 물색하는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채권단은 네이버스측과의 재협상을 통해 계약이행을 설득하되 계약파기가 분명할 경우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본계약시 제재조항을 명문화하지 않았으나 국제 관례상 본계약을 파기할 경우 법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채권단의 실책=채권단은 네이버스와 본계약을 맺을 때 약속했던 △2천여억원에 이르는 조세채권 현가할인 △당진부두 전용사용권 부여 △새로운 정리계획안의 법원인가 등 매도자측 이행조건만 충족하면 무조건 돈이 들어오는 것으로만 알았다.

채권단은 뒤늦게 네이버스가 시한내 대금 입금을 못할 것 같다는 낌새를 감지하고 지난달말 허겁지겁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대금 입금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으나 시원스러운 답변을 듣지 못했다.

지난 3월 본계약때 계약파기시 구체적인 제재조항을 두지 않아 이번 사태와 같은 어이없는 결과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작은 부동산 거래에서도 계약금을 걸고 ''파기시 위약금 지급''을 계약서에 명시하는데 4억8천만달러짜리 ''딜''인 한보철강 매각 계약에서는 계약금도 없었고 ''파기시 위약금 조항''도 두지 않았다.

정구학·김준현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