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태동단계에서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 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집권한 압둘라흐만 와히드(60) 대통령이 9일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일반 국정운영권을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부통령에게 위임키로 해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에 오점을 남기게 됐다.

와히드가 출범 9개월만에,그것도 임기를 4년 이상이나 남겨놓은 가운데 정치일선에서 퇴진한 것은 ''집권역량 부족''과 ''개인적 결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특히 와히드의 집권후 잦은 해외 순방과 공산당 허용발언에 따른 국론 분열,해외투자 부진,루피아화 폭락 등이 그의 지도력 부재와 맞물려 인도네시아 정국을 혼란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특히 와히드가 조달청 공금 3백50억루피아(약 46억원) 횡령사건 및 브루나이로부터 지원받은 2백만달러 착복의혹에 휘말린 것은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선정부엔 결정적 타격이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32년간 지속된 수하르토 독재정권을 청산하고 야당 당수인 와히드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만 해도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거보를 내디딘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앞서 치러진 6월 총선도 건국 이후 최초의 공명선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와히드는 집권후 정파와 전문가집단 군부 소수민족 등을 망라한 거국내각 구성을 통해 국민화합을 도모했으나 곧바로 군부통치시절 잠복돼 있던 종교간 갈등,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심화된 빈부격차,실업문제 등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와히드의 ''권력분점''카드는 자신이 권력에서 강제로 축출되는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면서 국정을 일대 쇄신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카드로 사면초가에 놓인 인도네시아 정국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도네시아의 새 국정운영 책임을 맡게 된 메가와티 부통령은 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지도자다.

인도네시아 국부인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맏딸인 메가와티는 높은 대중적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은 아직 검증받지 못했다.

이런 약점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가에선 메가와티가 혼미한 정국을 풀어나갈 적임자가 못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