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선은 어느새 홍도항 너머의 빠돌(둥근돌)해수욕장 선착장에 옆구리를 붙이고 있었다.

비금도와 도초도 사이의 좁은 바닷길을 빠져 속력을 내기 시작한 다음부터 눈을 감았으니 두시간 반이 훌쩍 지난 뒤였다.

내내 잠에 들었던 것은 비행기의 공기조절장치가 잘 작동되지 않아 피곤했던 탓도 있지만 홍도(紅島)에 대한 기대감이 그리 크지 않았던 때문이기도 했다.

홍도는 애꿎게도 선창가 작부(酌婦)이미지가 강했다.

"사랑을 팔고 사는"으로 시작되는 트로트가요 노랫말의 주인공 홍도로 인해 형성된 단편적 이미지가 그랬다.

개운찮은 걸음으로 출렁이는 선착장에 발을 내디뎠다.

승객들이 내리고 짐을 부리느라 떠들썩한 가운데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개인"이냐고 물었다.

고개를 가로젓자 또다른 여인이 똑같은 질문을 하고는 재빨리 옆사람한테 몸을 돌렸다.

숙소를 정하지 않고 찾은 관광객을 잡으려는 민박집 주인들이었다.

성가시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광지로서 홍도의 명성은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뻥튀기가 많이 가미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숙소로 가는 언덕빼기의 좁고 낮은 길에서부터 홍도에 대한 그동안의 이미지가 깨지기 시작했다.

언덕빼기에서 둘러본 홍도의 모습은 육중하면서도 수려했다.

오랜기간 보디빌딩을 한 남성이 팔을 굽혀 세운 알통 같은 지세(地勢)가 우람했다.

빠돌해수욕장을 감싼 검푸른 해안절벽은 보디빌더의 선굵은 장딴지 근육에서와 같은 속도감을 느끼게 했다.

튜브를 끼고 물장구를 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조용히 출렁이는 관광유람선, 먼바다를 살짝 감춘 해무는 새색시 볼의 홍조(紅潮)처럼 어울려 그 남성미를 드높였다.

짐을 푼 뒤 기대에 들떠 섬일주 관광유람선 파이오니아호에 올랐다.

해상유람은 홍도관광의 처음이자 끝.

금강산의 만물상을 옮겨 놓은 듯한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와 깊은 해식동굴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는 차례다.

시계방향으로 꺾은 유람선의 관광객을 처음 환영한 것은 거북바위.

고개를 쭉 빼고 왼발을 내밀어 기어오르는 듯한 거북의 모습이 역력했다.

옛날 청나라 해적선이 오면 풍랑을 일으켜 섬을 지켰다는 영물바위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아침햇살에 보석처럼 빛난다는 보석동굴을 거쳤다.

다음은 만물상.

금강산의 만물상과 겨뤄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오후 햇살을 받아들이는 만물상의 낯은 붉디 붉었다.

콜라병 형상으로 구멍이 난 바위도 신기했다.

석화굴엔 제주도 만장굴 천장에 달려 있는 것 같은 석순을 볼 수 있었다.

낙조때 고깃배 어부가 보면 무릉도원 입구로 착각한다고 해 꽃동굴이라고도 하는 해식동굴이다.

인근 독립문바위는 프랑스인이라면 개선문바위라고 할게 틀림없을 정도로 빼닮았다.

낮게 깔린 해무는 신비로움을 더했다.

풍랑에 휩쓸린 부모와 일곱남매의 애절한 얘기를 전하는 슬픈여바위를 지나 뻗은 해안절벽엔 원추리나무의 노란꽃이 점점이 피었다.

분재 전시장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각양각색의 키작은 나무들이 스스로 "진경산수"를 그렸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넘버원바위, 만리장성바위, 칼바위, 젖바위 등이 때론 우람하게 때론 부드럽게 이어졌다.

드디어 남문바위.

홍도 제1의 절경이다.

이 바위에 난 구멍을 지나면 재앙이 없어지고 소원이 성취된다고 해 "행운의 문" 또는 "만복을 내리는 해탈의 문"이라고도 한다.

"예전엔 애국가 영상에도 나왔지라"며 흥에 겨워하는 안내원 김점동씨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구경잘하고 가라며 합장하는 모습의 도승바위, 나무가 천장에 매달려 거꾸로 자라는 요술동굴, 최근 관광온 학생으로 인해 이름을 얻었다는 ET바위까지 모두 넋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때맞춰 댄 고깃배에서 친 즉석회는 감칠맛을 더했다.

오후 해상유람의 끝엔 놓칠수 없는 장관이 기다리고 있다.

서해 저편으로 떨어지는 낙조다.

빠돌해수욕장에서 맞는 낙조는 섬 전체를 붉게 물들이며 홍도의 이름을 더욱 선명히 각인시키는 마지막 역할을 해냈다.

홍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