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國 위상 재정립으로 한반도 통일 기여해야" ]

마이클 브린 < 메리트 버슨마스텔러 부사장 >

수천만 한국국민들이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수도 평양에 입성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 봤다.

김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환대받는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은 이번 회담의 구체적인 성과가 있든 없든, 앞으로 세상은 바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지난 48년 이래 남북한 사이를 적대관계로 묶어 놓았던 단단한 매듭이 헐거워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실제로 남북한의 대치관계는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민족주의 고조와 한국 미국간의 동맹약화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화해와 함께 미국은 휴전선 근방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서울 한복판에 미군기지를 포진시킬 명분이 사라진다.

워싱턴의 분석가들은 남북한 대립이 완화될 경우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역할이 변하게 될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남북한 화해시대에 걸맞는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화해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한국의 유권자들과 정부는 2천3백만명의 북한 인구를 포용하기 위해 드는 경제.사회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북한의 강한 자존심도 더 부유하고 개방된, 인구도 많은 남한과 섞이는 것을 허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은 동맹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면서 한동안 양체제가 존립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양국이 화해에 접근할수록 김정일은 서울과 외부세력으로부터 불가침과 정치불간섭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 그의 집권이 보장받기를 원할 것이다.

일부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해 반감과 호감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남북한은 모두 주변강대국 때문에 피해를 당해 왔다고 믿는다.

36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미국과 소련이 제멋대로 나라를 갈라놓으면서 이들의 피해의식의 골은 깊어졌다.

또 일부는 생화학 무기와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의 군사위협이 남측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책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미국이 남북한의 통일을 반대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반감들이 널리 확산될 경우, 민족적 자긍심과 맞물려 남북통일에서 미국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북한과 화해가 진전될수록 남한과 미국의 관심사 차이도 더욱 크게 벌어지게 된다.

미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보다 중국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영향력을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를위해 미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해석을 상황에 따라 달리 하게 될 것이다.

일본 역시 미국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국이 미군을 영내에 들여놓은 것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군사력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화해가 이뤄질 경우 한국은 북한에 대한 인센티브로 미군의 규모를 축소시킬 필요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화해가 이뤄진 한반도에서는 한국이 종전처럼 미국이나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견고하게 유지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한반도는 중립쪽으로 기울거나 또는 중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한후 한반도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미국이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다면 우선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을 미국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 약력 ]

<> 1952년 영국 출생
<> 86~94년 워싱턴타임스 서울주재 특파원
<> 87~92년 영국의 더가디언/더타임스지 서울주재 특파원
<> 94~97년 대북 컨설턴트

정리=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