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김대중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발표한다.

보도에 따르면 남북 정상회담과 더불어 시작될 집권 후반기 정국 운영 구상을 밝힐 것이라고 한다.

이 담화에는 과연 무엇이 담겨 있을까?

아마 다음 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한나라당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유화책이다.

여야 정상회담을 열어 남북정상회담 의제나 사회안전망 확충, 다음 단계 금융 구조조정과 재벌개혁 등 주요 국정과제에 대해 협의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국회의장을 양보하는 등 16대 국회 원 구성에서 제1당의 주도권을 인정해 주는 조처가 포함될 수도 있다.

이회창 총재는 14일 기자회견에서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인정하고 제대로만 끌고간다면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극심한 공천파동에도 불구하고 총선 승리를 거둔 이 총재는 지금 대통령과 대등한 위치에서 국정 현안 해결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야당의 차기 대선 후보 지위를 굳히고 싶다.

밤낮 싸움만 벌이는 강성 지도자 이미지도 벗어버리고 싶다.

여권이 여기에 협조해 준다면 이 총재도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야당의 태도와 무관하게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와 기대를 무기 삼아 펴는 강공책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 무조건 반대해온 기존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개혁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야당으로부터 "제대로 끌고 간다"는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개혁을 포기하면 "국민의 정부"는 정치적 존재근거를 잃게 되고 정권 재창출도 기약하기 어렵다.

그러니 일단 야당에 국정운영 협조를 요청하고 거부당하면 언론을 통해 국민을 직접 설득하면서 개혁노선을 관철하는 것이 낫다.

당선자 가운데 70여명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만큼 무더기 당선무효 판결을 기대하면서 자민련을 흡수통합하고 야당 의원 몇을 빼오면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영남 의석이 호남보다 36개나 많아서 선거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일 뿐 민주당이 사실상 선거에서 이겼다.

만약 여권이 이런 판단을 한다면 대통령 특별담화나 여야 총재회담은 강공으로 나갈 명분을 쌓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노무현 부총재와 김정길 전 정무수석, 김중권 전 비서실장 등 민주당의 유력한 정치인들이 모두 낙선한 영남지역 선거결과에 대해 대통령은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불만이 있는건 아니라고 한다.

그럴 것이다.

왜 서운하지 않겠는가.

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불만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억울한 면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민주당의 비영남지역 승리도 속내를 알고 보면 그리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득표율은 한나라당에 비해 서울에서 겨우 1.79%, 경기에서는 1.82% 높았을 뿐 인천에서는 오히려 1.1% 뒤졌다.

충남.북과 대전, 제주에서는 이겼지만 강원도에서는 졌다.

영.호남을 제외하더라도 민주당의 우위는 승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근소한 것이었다.

유권자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의석을 늘려 주었지만 어느 당에도 과반 의석을 허용하지 않았다.

동시에 공동여당으로서 사실상의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던 자민련에는 충격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여기에 담긴 뜻은 여야의 대연정(大聯政)이다.

두 당이 오만과 독선을 버리고 서로 타협해 김대중 정부 후반기 국정을 잘 이끌라는 요구다.

여든 야든 자민련을 끌어들여 다수파를 형성하려는 시도는 모두 유권자의 뜻에 어긋난다.

이런 민심을 제대로 읽은 특별담화를 기대해 본다.

< 시사평론가/성공회대 겸임교수 denkmal@hite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