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빈 토플러 >

반 세기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세계는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나치즘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외르크 하이더(보수당 당수)가 극우연정을 선언하자 파시즘에 대한 가정이 옳았는지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됐다.

하이더는 히틀러의 노동정책을 높이 사고 SS(나치시대 독일비밀경찰) 조직원들을 존경할 만한 신사로 여겨온 정치인이다.

그는 수 년간 신나치주의자들과 인종차별주의자 그리고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 학살)를 부인하는 이들과 가깝게 지내왔으며 이들이 펴내는 간행물과도 자주 인터뷰를 했다.

이런 하이더는 최근 실시한 선거에서 27%를 득표함으로써 유럽을 통틀어 반이민정책과 극단적인 국수주의 주장을 가장 성공적으로 써먹은 인물이 됐다.

5~15%의 지지로 우위를 보인 오스트리아 정당들은 나치즘과의 연계를 부인하면서도 신나치를 자신들의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였다.

최근 유럽에서 극우 정당들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히틀러의 등장을 설명했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유럽 곳곳에서 민주주의와 증오정치의 미래에 대해 혼란스러운 질문들이 나오고 있다.

하이더는 히틀러가 될 것인가.

그를 반대하는 이들은 그의 나치식 구호가 나치의 그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이 하이더"는 "하이 히틀러"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히틀러주의자들처럼 다른 민족에 대해 참을성이 없으며 무력을 선호한다.

그는 이민자들을 비꼴 때 추잡한 단어를 쓰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그도 나치처럼 이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한다.

그는 자신의 정당을 강철군화로 단속해 일체의 반대의견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흘러간다.

따라서 극단주의자들의 위험한 사조도 언젠가는 퇴조하기 마련이다.

나치즘은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의 조합에서 비롯됐다.

히틀러는 중압집권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경제를 건설했다.

하이더는 "포스트 대처"와 "포스트 레이건"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절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또 자유 시장경제의 원칙하에 부패하고 침체에 빠진 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하고 공공 서비스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그가 인종차별주의적 시각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도 지지를 얻기 위해 내세우는 가식에 불과하다.

하이더는 히틀러의 직계 후계자가 아니며 기회주의적인 정치인에 불과할지라도 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과 연합을 계속하는 대신 하이더를 연정에 끌어들인 절름발이 총리 볼프강 쉬셀(인민당 당수)도 마찬가지다.

쉬셀과의 연정을 거부한 사민당도 그렇다.

인민당과 사민당은 정부를 부패시켰다.

이 때문에 광대한 중앙집권 경제에서 시민들은 직업을 얻고 기술을 익히기 위해 뇌물을 줘야했다.

이제 변화할 때다.

오스트리아도 "제3의 물결"을 맞고 있다.

굴뚝을 기반으로 한 경제에서 미래의 지식기반 경제로 이행하고 있다.

서글픈 점은 주요 정당들이 모조리 과거의 정당이라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인터넷 시대를 표방해온 쉬셀은 그의 조국의 미래에 위협이 되고 있다.

사민당은 여전히 조립라인과 관료주의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하이더는 휴대전화를 갖고 다닌다.

또 인터넷을 통해 해묵은 인종차별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퍼뜨리는 무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것은 내일로 가는 바른 길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극우연정은 유럽이 21세기 경제로 넘어가는 데도 해악을 끼치고 있다.



<정리=김용준 기자 dialect@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