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72) 미국 암벡스 벤처그룹 회장은 7일 오전 서울 역삼동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3층 다이아몬드룸에서 가진 강연회에서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려면 이질적 문화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고 기존 사고의 틀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벤처기업의 본거지인 미국에서 성공한 대표적 벤처기업가다.

지난 82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 시스템사를 설립했고
지금은 벤처투자회사인 암벡스그룹을 운영중이다.

한국 벤처기업 육성을 도운 공로로 올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70년대부터 30년 이상 실리콘밸리에서 생활해오면서 "과연 실리콘밸리는
어떤 곳인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개인적인 체험에 따르면 실리콘밸리는 일종의 생태계와 같다.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딱 집어서 "이것이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기본 원칙은 몇가지 있다.

첫째 잡종문화를 체득하고 세계화해야 한다는 것.

둘째 안락한 동물원이 아니라 정글 같은 곳이라는 점.

그리고 세째는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이 속한 그룹의
값어치(매력)를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실리콘밸리에서 생존원칙인 동시에 벤처사업 성공의 원칙이기도
하다.

첫번째 잡종문화와 세계화를 짚어보겠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그렇듯 실리콘밸리는 하나의 멜팅 폿(melting pot)
이다.

이곳 사업가의 70%가 이민자이다.

미국의 지배계층인 WASP(백인 앵글로색슨 청교도)가 힘을 못쓰는 독특한
지역이다.

99년 이곳에서 창업한 사람의 35%가 중국 인도 중심의 아시아인들이라는
통계도 있다.

때문에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다.

이질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정보산업계 인사들과 자주 만난다.

그런데 한국 대표는 이런 자리에서 외국 관계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반면 싱가포르 대표는 앤디 그로브 인텔회장과도 스스럼없이 토론을 나눈다.

실리콘밸리에서 생존하려면 전세계 사람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두번째는 실리콘 밸리 더 나아가 벤처업계 자체가 정글과도 같다는 것이다.

기존 산업체제가 한가지 재주만 있으면 안락한 환경과 양식이 보장되는
동물원이라면 벤처는 정글과도 같다.

한가지 뛰어난 재주가 있다고 해서 장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또 벤처에는 기존 산업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

한국 벤처사업가들을 만나면 "벤처캐피털에서 자금을 지원하기 전에
"담보가 있나" "연대보증인을 내세울 수 있나"고 묻는다"고 한다.

이건 넌센스다.

이런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기술의 우수성만 보는 게 벤처 캐피털이다.

얼마전 한국 정부 관계자를 만났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벤처사업을 한다고
자금을 자꾸 가져가 문제"라고 하셨다.

이 분은 철강 화학등 중후장대산업을 일으킨 세대로 벤처산업의 가능성을
이해하지 못하신 것이다.

벤처는 분명 위험 부담이 있지만 성공 가능성도 크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의 매력을 높여야 한다는 점을 말하겠다.

국가나 민족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좋으면 사업할 때 분명히 유리하다.

그 나라에 투자가 몰리고 그 민족 사람과 함께 사업하고 싶어진다.

싱가포르가 좋은 예다.

인구 4백만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이 나라는 제반 산업과 인터넷 환경이
뛰어나 아태지역의 중심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또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민족이 섞여있다는 점을 잘 활용,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한국은 이 점에서 뒤처처져 있다.

미국에서 북아시아지역으로의 고급 여행상품은 도쿄 베이징 샹하이 홍콩을
경유한다.

서울은 빠져있다.

이것은 우리가 국가 매력도에서 뒤쳐져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비즈니스도 국제 사회에서 한국과 한국인이 차지하는 위치를 냉정히 깨닫고
세계에 대해 마음을 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 정리= 조정애 기자 jcho@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