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지도부가 거의 동시에 여당 당사와 국회 앞에서
각각 농성을 시작한데 이어 대규모 집회와 부분 및 총파업 계획을 별도로
밝혔다.

한국노총은 전경련 회장실을 기습적으로 강제 점거하기도 했다.

사용자는 물론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는 전면투쟁의 양상을 띠고 있어 두
노총의 선명성 경쟁이 본격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금지한 노동관계법의
조항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적한대로 오는 2002년 이후 시행할 예정인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 왜 시행도 되기 전인 지금부터 이처럼 쟁점이 돼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이 조항은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건전한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에 따라 지난 97년 여야 3당의 합의로 신설한 것이다.

그것도 즉각 시행할 경우 노조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5년간 시행을
유보했다.

노조에 충분히 대비할 시간을 준 셈이다.

노조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뿐
아니라 보편적 상식에도 반한다.

지난 70년대 노조 전임자로 일했다는 한 독자는 신문기고를 통해 앞으로는
노조로부터 떳떳하게 임금을 받자고 다짐하며 기금을 적립하던 과거 경험을
소개하고 "조합원들이 힘들게 벌어 납부한 노조회비를 절약해서 기금을 마련,
전임자 임금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안주겠다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은 조합원의 자존심 문제"라고
꼬집었다.

평범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쾌한 논리다.

이처럼 단순한 사안이 거꾸로 커다란 현안이 돼버린 것은 소신없는 정부와
표만 의식한 정치권 때문이다.

정부는 강경투쟁에 나선 노조를 달래는데 급급해 전임자 임금 문제를
재론키로 약속했고 정치권 역시 눈 앞의 이익에만 연연해 섣부르게 개입
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노동계가 행동에 나서자 정부는 묘수를 짜내느라 고심하고 있고 정치권은
노사정위에서 해결하라며 발을 빼고 있다.

이번 일은 주장이 너무나 엇갈리고 있어 노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 나오기 어렵다.

묘수란 더더욱 없다.

이럴 땐 원칙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정부는 공정한 심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정치권은 국익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또다시 얕은 꾀로 급한 불만 끄려다간 문제가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

노조는 합법적 수단을 존중해야 한다.

불법이나 폭력이 생기면 그 주장의 정당성까지 약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실업자가 1백만명이 넘는 현실에서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하는 동투가 국민들
의 지지를 끌어낼지도 의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