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응용화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류선종(33)씨는 지난 4월 비드테크
란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염색폐수처리용 고분자 물질을 개발한 이 기업엔 5명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
이 밤을 지새우며 성공벤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졸업후 취직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

중소.벤처기업의 창업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실업난 해소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월평균 1천6백여개에 불과하던 창업법인 수(7대도시 기준)는 올들어
월 2천3백개로 급증했다.

6월 이후에는 부도기업수의 10배 이상인 월 2천7백여개의 중소기업이 탄생
하고 있다.

창업시대라 할만 하다.

하지만 창업시대에 걸맞지 않게 실업률은 더디게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7월부터는 하락세도 주춤하고 있다.

실업률은 지난 2월 8.6%를 정점으로 6월 6.2% 등 4개월간 하락세를 이어
왔지만 7월들어 하락세가 멈췄다.

실업자수 역시 2월의 1백78만1천명 이후 월 5만~15만명 수준으로 줄던 것이
지난 7월에는 7천명 감소에 그쳤다.

정부가 줄기차게 외쳐온 "중소.벤처기업의 창업=실업난 해소"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최근에 정부가 내놓은 자료 역시 이 등식과 맞지 않아 정책의 일관성
을 의심케 한다.

당정이 지난 8월27일 내놓은 중기벤처육성방안에 따르면 중소기업을
2백67만개에서 2002년까지 3백만개로 늘린다.

중소기업 전체 고용인력도 9백만명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이 규모는 96년 수준(9백10만명)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업체수는 늘어나는 데 인력채용 규모는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 실업난속의 구인난 =경기도 부천에서 스테인리스 배관자재를 생산하는
삼영금속의 입구에는 항상 사원모집공고가 붙어 있다.

인력 구하기가 힘들어서라는 게 이회사 한혜숙 사장의 얘기다.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돼 산업기능요원을 써도 복무기간이 끝나면 3분의 2가
회사를 떠나는게 현실이다.

지방중기청에 설치된 취업알선센터에는 구인신청이 크게 늘고 있지만 실제
인력을 구한 중소기업은 적다.

구직신청도 많지만 매치가 안되는 것이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3D) 일은 하지 않겠다는 풍조가 사라지지 않은
탓이다.

부산에서 플라스틱 사출업을 하는 부산프라스틱공업은 최근 4명의
방글라데시 산업연수생을 채용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업종 특성상 주야간 2교대를 해야 하나 내국인들이
기피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최근 단순일용직 모집에는 12대 1의 경쟁율을 보였으나 생산직은
급여를 2배 수준인 월 1백10만원을 제시했는데도 모집이 안됐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외국인력을 내국인으로 대체하는 정부 사업도 지지부진
한 실정이다.

중기청이 지난 5월 시작한 이 사업을 통해 전국에서 1천50명의 외국인력을
대체하겠다는 신청이 접수됐다.

이중 5백명이 내국인으로 대체됐을 뿐이다.

이에따라 중기청은 연말까지 대체인력 목표를 당초 7천명에서 3천5백명으로
낮춰 잡고 보조금 지원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는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구인난을 겪는 기업이 늘면서 인력부족률도 IMF체제 이전수준으로 높아졌다.

지난해 1.10에 불과했던 중소기업 인력부족률은 지난 4월말 현재 4.0으로
97년(4.45) 수준에 육박했다.

문제는 인력난을 겪는 업종이 섬유 고무 금속 등 3D 업종 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상 음향 통신장비 등의 업종에서도 인력부족률이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업체의 한 관계자는 "요즘 인터넷 업계의 최대고민은 사람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쓸만한 인력은 한정돼 있는 데 오히려 창업은 늘어 인력 스카우트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대책은 =한국개발연구원의 김주훈 연구위원은 "무조건 기업수를 늘리는
창업 위주의 정책보다는 중소기업의 혁신을 통해 고용창출 능력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혁신을 위해서는 지식집약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
했다.

지식집약화의 가능성은 패션산업에서 감지되고 있다.

90년대 한국 제조업의 업종별 1인당 부가가치 증가를 보면 사양산업으로
외면당하던 의류산업이 세번째 위치를 차지했다.

이는 대기업 중심의 대량생산 체제가 해체되면서 대기업의 패션기획실에
일하던 전문인력들이 동대문과 남대문 지역에 패션업체를 창업한 덕분으로
풀이된다.

동대문의 두산타워와 밀리오레는 각각 2천여개 점포의 창업을 창출했다.

이는 중소제조업체의 하청물량 증가로 이어져 고용창출 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식집약화가 꽃을 피우려면 협동화 사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협동화 사업을 통해 고용을 창출한 사례는 적지 않다.

창원에서 경남열처리 등 2개사와 함께 철도차량부품 협동화사업장을 운영
하는 선우산기 관계자는 "사업장 운영전 자사 인력이 12명에서 지금은 35명
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수주가 늘어난 덕분이다.

이 관계자는 "혼자서는 소화 못할 일도 함께 있는 덕에 수주한 일감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력 양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현재 창업인력 양성에만 치중하는 인상이다.

그러나 기업을 혁신시킬 인력을 키우지 않고 창업만 늘려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 혁신화는 작업환경 개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기청 송재빈 인력지원과장은 "사람들이 힘든 일을 안하려 한다고 불평할게
아니라 기업 스스로도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오광진 기자 kj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