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영화계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특수효과"다.

특수효과의 성패가 영화의 흥행성적을 좌우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뚜렷하다.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영상세대의 감성을 따라잡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특수효과를 꼽고 있는 것.

영화의 지평이 확장되면서 환상과 불가능을 현실처럼 옮겨 놓기 위한 방편
으로도 특수효과는 필수적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영화가 이 부문에서 거둬들인 성과는 눈부시다.

최근 개봉된 "유령" "인정사정 볼 것 없다"도 특수효과로 무장,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여름성수기를 독점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까지 밀어내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탄탄한 이야기구조를 받쳐주고 있는 유무형의 특수효과들이 영화적 완성도를
살찌웠기 때문이다.

"용가리"도 특수효과만큼은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

"스타워즈" "쥬라기공원"으로 놀라고 "매트릭스"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우리영화계가 이제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

심형래씨의 말대로 "못해서 안한 게 아니라 안해서 못했을 뿐"이란 것이다.

14일 개봉되는 판타지 로맨스 "자귀모"의 특수효과는 특히 두드러진다.

"특수효과의 잔칫상"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총 20분(쥬라기공원 6분30초, 터미네이터 10분)2백 컷의 컴퓨터그래픽(CG)이
삽입되었고 3D애니메이션으로 완성한 장면의 길이도 1분에 달한다.

보편적인 크로마키기법부터 모르핑기법, 미니어처, 모델링과 렌더링을 통한
입체영상 등 CG기법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상상의 세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귀신"들의 마법 같은
사랑얘기를 매끄럽게 형상화해 냈다.

컴퓨터 애니메이터 채별(김희선)은 증권브로커 한수(차승원)와 연인사이.

한수는 그러나 출세를 위해 증권사 사장 딸인 현주(김시원)와 결혼을
약속하고 채별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배신감을 삭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채별은 "자귀모"(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의
약자)의 영업귀신(명계남 박광정)에 의해 전철에 밀려 뜻하지 않은 자살을
한다.

귀신이 된 채별은 한수에게 복수할 수 있다는 영업귀신의 꾀임에 빠져
"엉겁결"이란 귀명을 받고 자귀모에 가입한다.

채별은 이곳에서 칸토라테스(이성재) 백지장(유혜정) 다이어티(이영자)등
독특한 개성의 귀신들과 어울린다.

채별은 저승사자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며 집단 성폭행당한 후 자살한
백지장처럼 이승의 한수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저승사자의 신분으로 자귀모에 잠입해 활동하고 있는 칸토라테스의
만류로 갈등한다.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 깔리는 레일을 따라 달려오는 "저승열차", 사람과
구렁이 모습으로 솟아오르는 "투명한 물귀신", 음침하고 황량한 "저승세계",
나쁜 귀신을 잡아 단죄하는 "저승감옥의 처형장"등 특수효과로 구현해낸
영상들이 돋보인다.

홍주리(22)씨가 "자살한 귀신들이 동아리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란
엉뚱한 상상력에 따라 처음 쓴 이야기의 짜임새도 튼실하다.

이승에서와 똑같은 사랑과 질투, 질서와 일탈, 조직과 개인 등이 존재하는
저승세계의 모습을 정교하게 직조했다.

재치있는 대사와 상황으로 우려낸 유머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도입부의 이야기전개가 다소 느리고 일부 장면은 여운을 남기지 않고 서둘러
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쉽다.

데뷔작 "닥터봉"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새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광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