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처럼 미국의 경제각료중 로렌스 서머스 만큼 잰걸음을 하는 사람도
없을 듯하다.

연일 강한 달러화 정책을 외치지만 시장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취임 한달도 안되는 서머스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미국의 경기둔화
우려가 현실로 닥치고 있는 점이다.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엔화가 강세를 보이자 미국내 외자가 이탈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 시점에서 미국내 자본이탈은 미국경제의 둔화를 의미한다.

한동안 "미국 중심의 사회"라 불리울 만큼 세계 각국의 부러움을 샀던
미국의 재무장관이 최근처럼 자신의 발언이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일까?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서머스의 발언을 신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5년초 부임한 루빈의 강한 달러화 정책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경제나 미국경제가 이를 받아들일 만한 여건이 충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시장참여자들의 루빈 정책에 대한 신뢰도 뒤따랐다.

당시 세계경제는 달러화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졌던 것이 문제였다.

멕시코 페소화 위기 이후 95년 4월 중순에는 달러화 가치가 79.8엔까지
폭락했다.

기축통화인 달러화 가치가 폭락함에 따라 세계경제에는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따라서 세계경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달러화 가치가 어느 정도 부양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인식이 그해 4월 선진국들이 달러화 가치회복을 위해 공조개입에
나서는 역플라자 합의를 이끌어 냈고 지금까지 달러고 시대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강한 달러화 정책을 수용할 만한 여건이 됐다.

최대 장애요인이었던 무역적자가 GDP의 1% 내외로 임계치인 3%를 휠씬
밑돌았다.

강한 달러화 정책으로 무역적자가 확대되더라도 미 의회나 국민들로부터
비난의 여지가 적었다.

자본시장에서도 과열우려가 제기되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달러화를 실현하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 하더라도 미국경제에는
선순환(금리인상->외자유입->주가상승->자산소득 증가->민간소비 증가->
성장지속) 고리가 형성됐다.

최근의 상황은 어떤가.

무엇보다 세계경제가 더 이상 강한 달러화 정책을 받아들일 만한 여건이
못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97년 하반기 이후 개도국 금융위기와 세계경제의 불안은 달러고
에 기인하고 있다.

미국경제도 현 시점에서 달러화 강세가 지속된다 하더라도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많아 보인다.

이미 지난해부터 무역적자가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국제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슈퍼 301조를 동원하여 무역적자 축소에 나서고 있다.

더욱이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강한 달러화를 위해 금리를 올린다 하더라도 현재의 미국경제
여건하에서는 달러화 약세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자본시장의 과열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는 금리인상은 곧바로 미국경제의
침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들이 시장에서 서머스의 강한 달러화 발언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달러화 향방은 어떻게 될까.

일부에서는 85년 9월 이후 플라자 체제에 이어 신플라자 체제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달러고 현상을 시정하기 위해 당분간 선진국들이 공조개입
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과연 신플라자 체제가 탄생될 수 있을까.

우선 미국을 보면 이미 국민들의 저축률은 마이너스로 떨어진 상황이다.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서머스가 애가 닳도록 원하는
달러화 강세국면이 당분간 지속돼야 한다.

일본의 입장에서도 비록 1.4 분기 성장률이 1.9%로 높게 나왔다 하더라도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접어 들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아직까지 엔고에 따른 디플레 효과를 감당할 만큼 경제여건이 견실하지
못하다.

유럽도 일방적으로 달러화 약세를 용인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실물경제 여건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선진국들이 공조개입을 통해 엔화 강세를 유도하는 소위
신플라자 체제가 도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강한 달러화를 바라는 서머스의 발언도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때에 세계 각국의 통화가치는 경제기초여건이 충실하게
반영되는 방향으로 결정된다.

그 만큼 국제외환시장의 안정성은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제외환시장에서 채우지 못한 각국의 의도는 다른 시장에서
나타난다.

최근들어 세계 각국의 보호주의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무역마찰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한상춘 < 전문위원 sc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