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의 해외매각작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선진금융기관에 경영을
맡기는 위탁경영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매각전망이 불투명한 서울은행이나 대한생명을 헐값에 무리하게
팔기보다는 공적자금을 넣어 정상화한 뒤 위탁경영시키는 방안이 정부
일각에서 신중히 검토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16일 "현재로선 서울은행이나 대한생명의 매각에 주력하는
것 외에 다른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이 진행중인데 미리 실패할 것을 가정해 사후처리방안까지
얘기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른 당국자는 "정부 일각에서 위탁경영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선 아직 금융기관을 위탁시켜 경영한 사례가 없지만 작년에 미국
씨티은행이 수수료를 받고 제일은행을 위탁경영하겠다고 제의해온 바 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최근 "금융기관들은 자본합작보다는 경영합작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외자유치가 아니라 경영참여를 전제로 한 전략적제휴를 권장하겠다는
얘기다.

따라서 최근 홍콩상하이은행(HSBC)과의 서울은행 매각협상이 깨지고
대한생명이 3차입찰에서도 유찰된다면 차선책으로 위탁경영이 고려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대해 금감위 관계자는 "제일은행 매각이 성사되면 조건이 안맞아
서울은행을 못팔아도 IMF가 시비를 걸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브리지와의 제일은행 매각협상이 무르익고 있으므로 서울은행 매각협상은
비교적 부담이 덜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은행은 협상결렬시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위탁경영, 정상화->해외
매각 재추진"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해외매각은 IMF와 합의사항이란 점에서 현시점에서
위탁경영 검토는 적절치 못하다는 견해도 있다.

금융연구원 고성수 박사는 "간신히 국제신인도를 회복해가는 상황에선
IMF 합의대로 매각에 주력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외국금융기관은 철저하게 이익지향적이어서 큰 돈을 벌지 못하는 위탁
경영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생명은 내년중 생보사 상장허용 등 주변여건이 개선되고 있어 약간
다른 상황이다.

정부는 한화, 미국 파나콤, AIG 등 3개 인수희망자 가운데 우선협상대상자를
못고르면 선진보험사나 전문경영인에게 위탁경영시키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대한생명의 부채초과분 2조8천억원을 다 메우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최소한의 공적자금만 집어넣을 가능성이 높다.

국영보험사가 아닌 부실보험사인 상태에서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면서 재매각
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한빛 조흥 등 주요은행들을 사실상 국영은행화한 상태에서
추가로 국영보험사를 만들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헌재 위원장은 협상팀에게 서둘지 말고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처리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일은행 매각협상이 막판에 차질을 빚은 것도 우리측이 다급해졌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라는게 금감위의 분석이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서울은행 매각협상에서 "뉴브리지+알파"를 요구
하는데 대한 대비책으로도 보인다.

우리측에서 급할게 없다면 협상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판이 깨지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매각실패시 국민부담을 줄이고 나중에 제값받고 팔기 위해서라도 위탁경영은
정부의 "히든 카드"로 남겨질 공산이 크다.

정부가 공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민간에서 공채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선
위탁경영이다.

현재 거론되는 서울은행과 대한생명의 위탁경영은 팔기 싫어서라기 보다는
협상 장기화에 대비한 포석으로 봐야 할 것 같다.

< 오형규 기자 ohk@ >

[ 금융기관 해외매각 진행상황 ]

<> 제일은행 : 미국 뉴브리지 캐피털
98년12월31일 MOU 체결
=> 마무리 협상중

<> 서울은행 : 영국계 홍콩 상하이은행(HSBC)
99년2월22일 MOU(양해각서) 체결
=> 협상 중단

<> 대한생명 : 공개경쟁입찰(3차) (한화, 파나콤, AIG 경합)
=> 우선협상 대상 선정 못해 고심

<> 제일생명 : 독일 알리안츠
=> 99년6월12일 본계약 체결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