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2백여일 앞둔 이 즈음,한국의 좌표는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가.

"고급옷 로비 사건"에 이은 조폐공사 노조파업 유도발언 파문 등 과거로
되돌아가는 듯하는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미래를 향한 시계바늘은 멈추었는가.

21세기를 산뜻하게 맞을 방법은 없는가.

이어령 교수가 지금의 국정혼란을 극복하고 21세기를 향해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긴급 제시했다.

3회에 걸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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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의 꿈 두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새천년준비위원회에서 제안한 캐치프레이즈다.

종래의 획일적 구호와는 달리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자기 눈높이에
맞춰 응용할 수 있도록 된 것이 그 특성이다.

꿈은 사람에 따라,그리고 분야에 따라 서로 다를 수가 있다.

그래서 새 천년의 꿈이 국민 전체로 보면 평화요 행복이겠지만 기업가에게는
경제적 번영의 꿈, 정치가에게는 정의의 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문화예술가에게는 창조의 꿈으로 각기 달리 나타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제시한 두 손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가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와 사의 두 손이, 정치가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와 야의 두 손이 필요하다.

노와 사, 여와 야의 한 손으로만 잡으려고 하면 무거운 것은 들 수 없고
그 꿈은 깨지고 만다.

개인의 독창력을 필요로 하는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작업도 마찬가지다.

열정이나 감성만으로는 창조의 꿈이 실현되지 않는다.

상극하는 물과 불이 요리를 만드는 것처럼 감성에 대립되는 이성이 함께
거들지 않으면 예술적 상상력은 단순한 공상에 그치고 말 것이다.

예술가에 있어서 두 손이란 감성의 가슴과 이성의 머리가 그 역할을 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능률화하고 효율화하기 위해서는 두 개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그것을 극단화하는 것이 지난 20세기의 정책이었다.

이러한 배제의 관념 속에 살아온 우리들은 어린이를 보아도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의 양자택일적 질문을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선택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둘이 동시에 있을 때 완전한
삶을 이루는 존재이다.

그것을 비교하고 선별하고 그중 하나를 배제하려고 한 것이 지난 세기의
이항대립적 패러다임이었고 그것이 확대된 것이 20세기의 전쟁이요 냉전
이었다.

이러한 한 손 원리와 정책을 넘어서 모순하거나 대립하는 것을 병합하여
두 손으로 잡으려고 하는 것이 이른바 새 천년을 맞는 21세기의 새 패러다임
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상반하는 패러독스적인 사고를 동시에 수행하는 양자 병합적인 특성을
살려야 하는 것이다.

군대로 치면 해병대가 그렇다.

해병대는 해군이다, 육군이다 하는 종래의 조직원리와 달리 바다와 육지
에서 다같이 싸울 수 있는 양자 병합의 군대 조직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해군도 아니요, 육군도 아닌 모호한 조직이 아니라 두 가지 모순되는
요소를 철저하게 갖추어야만 그 특성을 발휘할 수가 있다.

기업의 경우 양자 병존의 두손 전략으로 성공한 것이 바로 21세기형 기업
이라는 3M이다.

보통 기업에서는 어떤 목표와 전략을 세울 때 그 이익추구를 단기적으로
설정하느냐 장기적으로 설정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지만 3M의 기업문화는 양자 병존의 전략으로 나가 장기 단기 모두를
충족하는 포괄적 전략을 사용한다.

경영목표만이 아니라 기술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3M의 인간공학을 토대로 한 제품개발 가운데 신제품으로 내놓은
마우스 매트는 의료용 기술과 불소수지기술 마이크로복제기술, 그리고
부직포기술 등이 복합적으로 이용된 산물이다.

3M만이 아니다.

반도체 생산에서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제조라인에서 만들어진 메모리분야와
논리 분야를 양자 병존시킴으로서 코스트를 절감하고 생산성도 높인 예가
그것이다.

옛날에는 멸시의 대상이었던 잡동사니라는 말이 이제는 치즈형태의 기업
보다 샐러드 보울의 기업구성을 뜻하는 바람직한 모델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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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 34년생
<> 서울대 국문과
<> 단국대 국문학박사
<> 이화여대 교수
<> 문학평론가
<> 문화부장관
<> 현 이화여대 석학교수, 새천년준비위원장
<>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어령전집(22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