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차로 1시간 가량 가다보면 안성 톨게이트가
나온다.

이곳을 빠져 나가 1번 국도로 30분 가량 달리는 동안 널찍한 평야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평택평야다.

갓 심어진 모가 푸릇푸릇하게 들판을 수놓고 있다.

이 평야 한복판에서 인터넷 프런티어의 꿈이 영글고 있다.

"사이버 쌀장사" 이종우(46)씨가 그 주인공.

이씨가 인터넷 사업의 꿈을 키워내고 있는 보금자리는 충남 천안시 성환읍
복모리 378번지.

앞뒤가 모두 논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마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빨간색
기와지붕이 인상적인 집이다.

이씨의 집을 겉에서 보면 여느 집과 다를게 없다.

그러나 집 안채 이씨의 건넌방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최신형 컴퓨터에 팩스 프린터 등이 갖춰져 있는 첨단 사무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곳은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의 장이다.

시골 농부가 인터넷과의 만남을 통해 "돈 버는 농촌"을 가꾸고 있는 곳이다.

이종우씨는 쌀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인터넷 싸전"을 이곳에 열어 자신이
직접 재배한 쌀을 집에 앉아 전국 각지에 내다팔고 있다.

"죽어라 농사를 지어도 손에는 항상 턱없이 적은 돈이 쥐어지더군요.
중간 도.소매상들이 마진을 따먹기 때문이지요. 직접 판매에 나서는 길을
찾다 인터넷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이씨가 인터넷 쌀 쇼핑몰인 선우유통(www.ssal.co.kr)을 차리게 된 동기다.

이씨는 현재 자신이 재배한 쌀을 상표등록한 "해드림쌀"이라는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이씨가 인터넷 공간에 쇼핑몰을 차리고 처음 쌀을 선보인 것은 지난 4월1일.

2개월도 안돼 요즘 하루에 전국 각지에서 20여 부대(20kg 기준) 정도씩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자리 잡았다.

이씨가 첫 주문을 받은 것은 지난 4월8일.

쇼핑몰이 문을 연지 1주일만이었다.

첫 주문자는 수원에 사는 주부 최경애씨.

"너무 감격스러워 그날 밤은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였습니다"

이씨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컴맹이었다.

그러던 그가 인터넷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업체인
미지넷을 만나면서부터였다.

홈페이지를 통해 쌀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사이버 실크로드"를 발견했던
것이다.

지난해 10월께의 일이다.

그때부터 꼬박 반년간을 인터넷 사업을 준비하는데 힘을 쏟았다.

혼자서 컴퓨터 공부를 하다 모르면 미지넷에 기초부터 하나하나 물어가며
깨쳐 나갔다.

그런 그를 두고 동네 사람들은 "별 미친놈 다 보겠다"며 처음에는 손가락질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희한한 판매방식도 다 있구나" 하며 감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극구 반대하던 아버지 이인재(77)씨도 요즘은 "오늘은 얼마나 주문이
들어왔느냐"고 물을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씨가 인터넷 사업을 준비하면서 들인 초기 투자비는 모두 1천4백여만원.

특히 이중 부대 개발에만 4백만원이라는 큰 돈을 투자했다.

부대가 튼튼해야 배달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신념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코팅을 입힌 특수제지로 만든 부대가 탄생했다.

또 컴퓨터 팩스 전화기 등 시설비로 3백여만원, 홈페이지 제작비로 2백만원
등이 들었다.

농군인 이씨로서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럼에도 이씨가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은 인터넷 사업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쌀의 품질로 승부를 걸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쌀맛은 도정 시기가 좌우하는데 주문 즉시 도정해 배달하면 최상의 쌀맛을
낼 수 있다는 점을 간파했던 것.

주문에서 배달까지 길어야 3일이 걸린다.

반면 시중에서 유통되는 쌀은 보통 도정한지 보름이상 지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이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한번 "해드림쌀"을 맛본 고객은 대부분 "쌀이 찰지고 윤기가 나 맛이 좋다"
며 고정고객으로 바뀌고 있다.

가격이 시중보다 싼 것도 해드림쌀의 강점이다.

일반미 20kg 들이 한 부대의 시중가격은 5만4천~5만5천원선.

해드림쌀은 4만9천5백원으로 훨씬 싸다.

이씨는 이같은 추세라면 올해 판매량이 5천 부대는 거뜬히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2억5천만원선이다.

인건비 농약값 등 각종 비용을 제하더라도 1억5천만원 가량의 순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96년까지 직장생활을 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해 다니던 회사가 어수선해지자 미련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복모리로
내려왔다.

복모리는 이씨의 가문이 6대째 살고 있는 뿌리깊은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은 논 6만평(3백마지기)에 벼를 재배하고 있는 어엿한 농민으로 변신
했다.

그것도 1년 소출이 자그마치 1천가마(80kg 기준)에 이르는 대규모 영농인
이다.

"제 사업이 전국의 농민들이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통해 쌀을 판매하게 되는
기폭제가 됐으면 합니다"

농민이 중간마진을 떼이지 않고 소비자와 직거래할 수 있는 인터넷
전자상거래.

이씨는 이를 두고 농민들이 쏟는 노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최선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 류성 기자 sta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