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윤재(40) 한얼종합법률사무소의 대표 변호사.

그가 출장갈 때마다 들고 다니는 검은색 가방에는 남다른 사연이 담겨 있다.

이 가방은 백 변호사 자신이 구입한 것이 아니다.

경기도 광주의 한 중소업체 사장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

지난 97년의 일이다.

당시 이 중소업체 사장은 납품대금을 받지 못해 부도직전에 몰려 있었다.

이 사장이 생각다 못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은 사람이 백 변호사
였다.

그 직후 백 변호사의 친절하고 적절한 조언 덕택에 무너져 내리는 회사는
올곧게 재기할 수 있었다.

물론 법률상담은 무료였다.

백 변호사는 낡아서 버릴 때가 된 검은색 가방을 아직도 애지중지하며
사용하고 있다.

그가 이런 애뜻한 사연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매체 공익변호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중매체 공익변호사는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생활법률을 국민에게 쉽게
설명해 주고 무료로 법률 상담 등을 해주는 변호사다.

이 분야에서 일하다보면 법을 몰라 고통받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몇 십명씩
상대하게 된다.

지금은 이름모를 그 중소업체 사장도 이 업무를 하면서 만난 사람이다.

백 변호사가 이 분야에 뛰어든 것은 지난 95년.

그야말로 우연으로 시작된 거보였다.

평소 알던 변호사가 "목소리가 좋으니 라디오 방송활동을 하면 제격"이라고
그를 방송국에 소개하면서 대중매체공익변호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때 처음 맡게 된 것이 MBC 라디오의 "백윤재의 생활법률"이라는 프로다.

이후 무려 3년 6개월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있다.

방송사들의 법률상담 프로를 통틀어 최장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MBC로부터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97년에는 특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 덕도 있지만 어려운 법률을 알기 쉽게 얘기하는 뛰어난
말솜씨가 그를 장수프로 진행자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비결이다.

본인은 "무식한 변호사이다보니 어려운 법률용어를 쓰지 못한 것이 오히려
어필하는 것 같다"고 겸손해 한다.

대개 법률상담 프로는 길어야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변호사들이 상당한 시간을 빼앗기는 데 비해 수입에는 전혀 도움이 안돼
오래 맡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에 1년 가까이 연재하고 있는 "돈과 법률"이라는 칼럼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대중매체 활동이다.

매주 화~금요일에 연재되는 이 칼럼은 누구나 알기쉬운 생활법률 해설로
독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밖에 방송대학 CATV는 물론 각종 잡지를 통해 생활법률을 국민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지금은 그를 알아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요금을 받지 않는 택시기사
가 생길 정도로 인기스타다.

하루에 상담전화만 전국에서 30여통 이상이 온다고 한다.

백 변호사는 일일히 전화 상담에 응하고 방송 신문 활동을 하느데 하루
최소 2시간씩을 할애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는 결코 한가한 변호사가 아니다.

지난해에만 업무상 해외출장만 44번이나 갔다.

하지만 한번도 자신이 맡은 방송 및 신문 활동을 펑크낸 적이 없을 정도로
책임감이 남다르다.

"법을 몰라, 돈이 없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무료로 돕는 것은 어찌보면
변호사가 해야할 당연한 책무가 아닙니까"

그가 돈벌이가 안되는 대중매체를 통한 공익활동에 굳히 애착을 갖고 있는
이유다.

그가 이런 생각을 굳히게 된 것은 지난 90년대초 미국의 로펌인
브라이언&캐이브에서 근무할 때다.

미국의 로펌들은 소속 변호사들에게 일하는 시간의 10~15%를 프로-보노
(공익활동) 서비스에 투자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는 개인 변호사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공익활동을 하기가 로펌 소속
변호사보다 어려운데 현실은 정 반대입니다"

그는 법무법인들이 공익활동에 적극 나설때 법조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정서도 상당히 수그러들 것이라며 그렇지 못한 현실을 못내 아쉬워했다.

사실 백 변호사는 M&A(인수합병)와 금융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변호사다.

지난 93년 미국 로펌인 브라이언&캐이브에 스카우트 될때는 이 분야의
능력을 인정받아 13만달러가 넘는 초봉을 받았을 정도다.

이는 미국 로펌에서 한국 변호사 출신에게 준 초봉중 최고액수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중매체를 통한 공익활동을 벌이다 보니 갖가지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이중 "국회에 진출하기 위해 애쓴다"는 얘기가 가장 듣기 싫은 소리란다.

< 류성 기자 sta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