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은 법원판결이 경제개혁을 이끌어 낸 한해였다.

부실경영 대표이사에 거액배상판결을 내려 책임경영 풍토를 조성하는 계기가
됐다.

또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 대주주들의 횡포에 제동을 걸었으며 퇴직한
금융기관 임직원에 부실대출책임을 끝까지 추궁, 배상판결을 내렸다.

이는 모두 전례가 없는 판결들로 주먹구구식 기업경영풍토에 경종을 울렸다.

무책임경영으로 특징지워지는 IMF이전의 구경제체제를 일깨운 것이 바로
98년 사법부의 판결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찍이 이런 판례가 나왔다면 오늘과 같은 부실경제구조
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제일은행 임원 부실경영배상 =지난 7월 서울지법은 한보철강에 부실대출
해준 책임을 물어 제일은행 전직임원에게 4백억원을 직접 배상토록 판결했다.

이 판결은 퇴직 금융기관임원의 재임시 부실경영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은 첫 판례였다.

회사야 어떻게 되든 퇴직하면 그만이라는 풍토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이 판결은 특히 부실경영으로 손해를 본 소액주주들의 법적 권리를
배상판결로 인정해준 것으로도 유명해졌다.

판결이 나온 이후 부실기업 전현직임원들은 소송에 걸리지 않을까 전전긍긍
해야 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기업주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메가톤급 배상판결이
잇따랐다.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에게 무려 3천5백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새한종금 부실과 관련, 거평그룹 나승렬회장에게는 8백억원의 손해배상판결
이 뒤따랐다.

<>한보 정태수회장 사정재판 =기업과 국가를 위기로 몰고간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을 처음으로 사정재판에 회부, 1천6백억원의 손배책임을
물린 것도 "올해의 판례"로 기록될만하다.

사정재판은 법조문에는 있었으나 한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사문화된
민사소송절차였다.

사정재판이란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주의 책임을 물을 수있는 장치다.

<>소액주주운동 인정 =올해는 시민단체들의 소액주주운동에 법원이 가세한
한해였다.

시민단체들이 후진적 경영환경을 개탄, 인권변호사와 힘을 합쳐 소송으로
개선했다.

대표적인 것이 참여연대의 삼성전자 전환사채 부당소송이었다.

법원은 삼성전자의 전환사채발행은 사주의 2세에게 주식을 넘겨주려는
변법이라는 주장을 인정,편법주식증여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됐다.

<>금융기관 부실대출책임 추궁 =회수가능성과 사업성을 감안하지 않고
대출해준 금융기관에 책임을 물은 것도 주목할만하다.

성원상호신용금고 부실과 관련, 전직대표이사에 대한 6백40억원 배상판결이
내려졌다.

또 새한종금을 통해 거평산업개발에 2백억원을 대출토록 지시한 나승렬
거평그룹회장에 같은 액수의 배상을 서울지법 민사합의12부가 판결했다.

이밖에도 기아자동차의 정리채권중 7백억원의 채무를 면제시킨 판결은
담보없는 일방보증행위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주먹구구식
대출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경영권유지용 화의신청기각 =서울지법 민사50부는 대기업들의 화의신청을
줄줄이 기각했다.

화의신청은 법정관리와 달리 기업주가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

이 점이 부각되면서 파산직전에 있던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피하고 너도나도
화의신청으로 몰렸다.

이에대해 법원은 부실경영주가 책임질 생각은 않고 경영권유지까지 노린다고
질타, 화의신청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경쟁력없는 기업은 도태시켜야 한다는 퇴출여론에 사법부도 동참한 것이다.

이를 위해 법원은 부채가 2천5백억원이상인 기업은 기각한다는 가이드라인
까지 만들어 시행했다.

뉴코아그룹과 미도파백화점 등이 강화된 화의법을 적용받아 결국 법정관리로
전환신청했다.

이후 화의신청을 일단 내고 보자는 부실기업주들이 사라지게 됐다.

<>일방적 보증채권 불인정 =기아자동차 법정관리인이 갚을 채무로 인정할
수 없다며 제기한 정리채권소송에서 서울지법은 기아측의 손을 들어줬다.

기아가 부도를 내기직전 이나 직후 6개월사이에 아무런 댓가를 받지 않고
계열사에 보증서준 채무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판결내용이었다.

회사정리절차법상 부인권을 기아측에 적용해준 것이다.

이로인해 기아측은 7백억원에 이르는 계열사 보증채무를 면제받았다.

반면 금융기관등 채권자들은 기아의 보증만 믿고 기아계열사에 지원한
채권을 고스란히 부실채권으로 떠안게 됐다.

이 판결은 보증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