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3개의 초강대국만 남아 있다. 미국과 무디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그것이다" 미국 월 스트리트에는 지난 여름부터 국제신용평가
기관들의 무소불위적 "횡포"를 빗댄 이같은 속설이 흘러다닌다고 한다.

지난 한햇동안 외환위기 속에서 이들 신용평가기관의 위세를 뼈저리게
체험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에는 이 말이 단순한 빈정거림으로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생경하게만 느껴지던 무디스, S&P 등은 어느새 익숙한
이름이 되었고 이들이 휘두르는 "국가신용등급"이라는 무기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는 국민 대다수가 피부로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지난 28일 일본 국제금융정보센터(JCIF)가 공개한 국제신용평가기관에 대한
"역평가"보고서는 신용평가기관의 신뢰성을 검증한 최초의 본격적인 보고서
라는 점에서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끈다. 8개월여의 작업끝에 나온 이 보고
서의 결론은 예상대로 신용평가의 신뢰성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JCIF는 준정부기관인데다 일본내의 반 무디스 정서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역평가 자체의 공정성을 문제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
가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신용평가의 공정성과 예측력은 오래전부터
의문이 제기돼온 사안으로서 이번 검증을 통해 그 실체가 어느정도 드러났
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무디스가 94년 "투기적 신용등급"을 매긴 29개의 일본기업 중 지금
까지 채무불이행에 빠진 기업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은 신용등급이 실제의
채무이행능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또 같은 투기적
등급을 받았을 경우 미국기업의 채무불이행 비율이 다른나라 기업에 비해
훨씬 높았다는 것은 아시아 기업사정에 상대적으로 어두워 아시아 기업에
대한 평가의 정확도가 미국기업에 비해 떨어짐을 의미한다.

신용평가기관의 위기 예측능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이번 조사결과가
아니더라도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입증된 상태다. 가깝게는 작년 11월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기 직전까지도 이들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을 초우량
등급으로 판정했었다. 그러다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한꺼번에 여섯단계나 등급을 깎아내렸다. 신용평가기관들이 "울리지 않는
자명종"이라는 별명을 얻게된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각종 의혹에 시달리면서도 이들 기관은 "신용평가는 속성상 주관
적일 수 밖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관적 판정이
특정기업은 물론 한 국가의 경제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신용평가 논쟁을 계기로 평가기관들은 신용판정 기준을 공개함으로써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며 각국 정부와 기업 투자자들은 신용평가기관
을 더이상 성역시하거나 신용등급을 절대시하는 풍조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