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재벌 계열사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적인 금융제재가 시작됐다.

상업은행 등 LG그룹 채권 금융단은 28일 LG반도체에 대해 2단계 금융제재를
결의했다.

1단계는 이날부터 시행에 들어간 신규여신 중단.

2단계는 만기도래 여신의 일정비율을 단계적으로 회수하는 것.

2단계 금융제재 시행시점과 회수비율 등은 두 회사의 해결방안 모색과정을
봐가며 나중에 결정하기로 했다.

이번 금융제재는 두가지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채권단은 자율로 시작된 두 회사의 반도체 빅딜이 합의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책임있는 기업을 벼랑끝으로 모는 극약처방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신규여신 중단을 공개적으로 착수했다는 것이 특히 그렇다.

물론 그간에 신규여신 중단 조치가 없었던건 아니다.

지난 6월18일에는 55개 퇴출기업 명단이 공개됐다.

10월에는 25개 5대 그룹 계열사에 대해 여신중단 조치가 취해졌다.

당시 25개 기업의 명단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LG반도체는 이들 기업과 다르다.

규모나 가치 등 어느 기준에서도 LG반도체는 거대기업이다.

금융권 차입금만 7조에 이른다.

따라서 신규여신 중단으로부도가 났을 경우 금융기관에 미치는 타격도
엄청나다.

신규여신중단만으로 LG반도체가 입을 피해는 크지 않다는 주장도 없는 것은
아니다.

LG반도체가 현금유동성 등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당장 자금조달이
끊기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상징성이 크다.

정부의 각본아래 채권금융기관들이 LG반도체에 새 여신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이 해외에 알려지면 LG반도체는 기업이미지가 일그러진다.

그럼에도 채권단이 LG반도체에 신규여신 중단이란 카드를 내민 것은
현대전자와의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이라 볼 수 있다.

약해 보이지만 강한의지를 담은 것이다.

채권단은 실제로 강수를 준비중이다.

두 회사가 핵심경영주체선정에 합의하지 않으면 만기가 오는 여신까지도
회수한다는 입장이다.

강온양동작전을 구사하는 것이다.

기존 여신회수는 LG반도체가 견디기 어려운 사태를 빚을수 있다.

하지만 채권단은 그런 사태가 오지 않길 바라고 있다.

채권단은 이날 회의에서 두 회사가 핵심경영주체 선정을 위해 협의를 더
해줄 것을 촉구했고 그 촉구가 받아들여지길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사태가 장기화되는 경우다.

현대전자와의 협상이 2,3개월씩 걸릴 경우 사태를 비관적으로 본 채권단이,
특히 제2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수할 공산이 크다.

은행들도 LG반도체가 발행한 CP(기업어음)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자칫하면 대출금회수 도미노가 일어날지 모른다.

일각에선 LG반도체가 결국 ADL의 통합법인 경영주체 결론에 조만간 동의할
것이며 댓가로 LG반도체에 대한 보상빅딜안이 급부상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정부의 빅딜성사의지는 강력하다.

이날 김대중대통령은 박태준 자민련총재와 만난 자리에서 핵심경영주체
선정은 LG의 장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빅딜성사를 그룹의 미래와 연관시켰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 이성태 기자 ste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