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계의 귀재"

"한국 피자업계의 대부"

한국 피자헛 사장이었던 성신제 사장에게 붙어다니던 수식어다.

지난해 10월 닭고기 식품업계에 진출한지 4년만에 부도를 맞고 세인의
관심속에서 사라졌던 그가 다시 재기의 기지개를 펴고있다.

"성신제 피자"라는 새로운 상품을 들고 자신의 손으로 키웠던 "피자헛"과
한판 승부를 벼르고있다.

성사장의 인생은 우리 경제의 축소판이다.

성사장은 지난 84년 한국 피자헛을 세운뒤 10년만에 이 회사를 매출
4백6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신화적 인물.

지난 93년에는 피자헛을 매각하고 캐니로저스라는 브랜드로 닭고기시장
평정에 나섰다.

한 때는 서울시내에 8개 점포를 거느리며 피자헛의 영광을 재현할 꿈에
부풀어있었다.

그러나 97년초부터 사업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경기가 침체되면서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위기를 공격적인 경영으로 극복하려던 그는 결국 10개월만에 손을 들었다.

매장 수를 줄이고 긴축경영에 나섰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지난해 10월 결국 부도를 맞고 회사는 문을 닫았다.

실패를 모르던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사무실에 밀려온 채권자들은 그를 사기꾼으로 몰아부쳤다.

그중에는 자신이 피자헛에 있을 때부터 키워온 사람들도 있었다.

말할수 없는 비애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재기를 결심했다.

그냥 물러서기에는 그동안 쌓아왔던 노력과 성과가 너무 아쉬웠다.

한번의 실패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젊었다.

나이 50세, 다시 일어서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재기를 결심한 날, 그는 사무실에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심경을 글로 옮겼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면서 치열하게 살아가겠다"

새로운 사업구상에 들어갔다.

내가 잘알고, 남들보다 잘할수 있는 것, 역시 피자였다.

미국의 피자는 기름에 튀겨 맛이 느끼하다.

이태리식 피자는 손으로 빚어 담백하지만 대량생산이 어려웠다.

담백하면서도 손쉽게 만들어낼수 있는 피자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상품개발에 성공했다.

그는 미국의 투자자에게서 빌린 40만달러로 자신의 이름을 딴 "(주)성신제
피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4월 명동에 1호점을 차렸다.

50평짜리 조그만 가게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담백한 맛에 반한 젊은이들이 매일 매장을 가득 메웠다.

하루 매출액이 1천만원을 넘어섰다.

이제 성사장의 꿈은 피자의 본고장인 미국과 이태리에 진출하는 것.

3년내에 지점을 10여개로 만든 뒤 해외진출을 모색할 생각이다.

"세계적인 미식가들이 모여있는 비버리힐스와 로마에 우리 밀가루로 만든
피자집을 만들고 싶습니다"

미국 브랜드로 국내 피자시장을 평정했던 성사장.

이제는 자신의 브랜드로 세계 피자시장 정복을 꿈꾸고 있다.

연락처 (02)776-0141

< 김태완 기자 tw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