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갈리아는 루마니아 동남쪽 흑해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다.

여름 한철만 모텔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붐빈다.

나머지는 연중 손님을 구경하기 어렵다.

해가 일찍 떨어지는 10월 하순에 찾은 망갈리아는 그래서 더 스산했다.

낙엽이 뭉쳐 뒹구는 지저분한 거리엔 상점도 거의 없었다.

대우망갈리아중공업 서완철 사장이 지난해 초 부임했을 땐 조선소 내부도
꼭 그랬다.

"20여년 역사를 가진 유럽내 설비 5위의 조선소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만들다간 만 중고선박, 강판 조각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고철을 치우는데만 두세달이 걸렸다.

수주해 놓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파트너측 임원도 경영마인드가 전혀 없어 보였다.

대우 사람들이 수주영업에 바쁘게 돌아다니는데 "배는 1년에 한척만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며 이해못하겠다는 표정만 지었다.

"석달동안 체조와 청소만 했습니다. 루마니아 직원들이 어리둥절해
하더군요. 한국에선 원래 이렇게 한다고 하면서 아침부터 한국에서 가져온
체조구령녹음을 틀어댔습니다"(서완철 사장)

처음엔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던 이들이 훨씬 많았다.

한국인 사장부터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땀을 흘리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근본적으로 순진하고 자기 기술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루마니아인들이
자극을 받자 성과는 금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해 3월1일 첫 수리선을 수주하고 28일엔 최초 신조선을 따내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사회주의적인 태만이 팽배해있었다는 얘기다.

5월20일에는 철강재가 1천8백t이나 소요되는 대형수리선을 수주했다.

10월엔 조선소 역사상 월단위로 최고 매출인 5백만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50만달러의 경상이익까지 따라왔다.

현지인에게도 이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대우망갈리아중공업은 설립 2년이 채 못돼 루마니아정부로부터 가장
모범적인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사랑"받고 있다.

망갈리아 프로젝트의 성공에는 그동안 휴가없이 열심히 뛴 20여 현지
임직원들의 공이 크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요인은 인근 어느나라에서도 거들떠 보지 않던
망갈리아 조선소의 성장 가능성을 발견한 대우 세계경영전략에서 찾아야
한다.

루마니아는 1인당 GDP가 1천5백달러대에 불과한 동유럽내에서도 후진국에
속한다.

지난해 기준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 6.6%, 경상수지 적자도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언제 거래선이 "자빠질지" 모르는 곳이다.

남들이 위험해서 가까이 않던 이 나라에 대우는 발을 디뎠다.

진주 수확은 벌써 시작됐다.

대우망갈리아중공업의 자본금은 모두 1억4백만달러.

대우중공업은 이 가운데 5천3백만달러를 현금출자해 51%의 지분을 갖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5천3백만달러도 전부 준 것이 아니다.

2천3백만달러는 기술이전료로, 4백만달러는 관리용역비로, 4십만달러는
창업비로 제했다.

지금까지 대우가 실제로 루마니아에 투자한 돈은 2천4백10만달러에
불과했다.

내년에 4백만달러를 더 투자하고 2000년부터는 매년 약 2백만달러를
"벌어서" 주면된다.

"3천만달러에 2억달러짜리 조선소를 갖게 된 것"(이열호
대우망갈리아중공업 관리담당이사)이다.

뿐만 아니다.

망갈리라조선소 덕분에 대우는 조선부문 포트폴리오도 다시 짤 수 있게
됐다.

국내(옥포)에선 대형선박을 주로 건조하고 망갈리아에선 중소형 선박을
전문적으로 건조키로 한 것이다.

이는 망갈리아의 입지조건이 가져다 준 결과다.

카스피해 유전의 원유를 유럽으로 운송하는 "트라체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어 흑해연안의 중소형 선박 수요가 크게 늘 전망이다.

오는 2000년에는 신조선 3억달러와 수리조선 5천만달러를 합해
3억5천만달러어치를 수주할 계획이다.

"대우식"으로 새벽에 시작된 브리핑이 끝날 무렵 출근하는 현지인들이
통근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국내 최고 급여의 조선소 직원"이라는 자부심이 비치는 얼굴에선 망갈리아
거리의 스산함은 없었다.

곧이어 "하나 둘 셋 넷" 하는 한국어 체조구령에 맞춰 아침체조를 하는
소리가 야드에서 들렸다.

대우가 발견한 진주는 어쩌면 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망갈리아(루마니아)=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