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시장 규제와 투자여건 ]

외국제약업체들은 한국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들이 한국 시장에서 겪고 있는 사업상 어려운 점들은 무엇일까.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경제개혁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한국경제신문은 "한국의 경제위기와 개혁프로그램"을 주제로 한 외국인
좌담회 시리즈 네번째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 제약업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한결같이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적 대우가 사라져야 하며 국제
규정과 관행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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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담 참석자 : 로렌스 스미스 < 한국화이자 사장 >
마이클 제다 < 한국롱프랑로라 사장 >
이승우 < 한국MSD 사장 >
전성철 < 사회 / 국제변호사 > ]

<> 전성철 국제변호사(사회)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개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 마이클 제다 한국롱프랑로라 사장 =속도가 문제다.

정부와 기업이 얼마나 빨리 개혁을 추진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지금의 속도라면 경제회복은 상당히 지연될 수 밖에 없다.

<> 이승우 한국엠에스디 사장 =과감했고 방향도 옳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부내 구석구석까지 개혁바람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공무원들의 경직성과 관료주의는 여전하다.

한국 정부가 더 많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면 원칙에 입각해 일을 처리
해야 한다.

새로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시장조사를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아마 현재 한국에 와있는 외국업체들 일것이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한국 투자를 적극 권유할순
없다.

한국 정부는 기존 외국업체들의 "입선전"이 외국인 투자유치에 매우 중요
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로렌스 스미스 한국화이자 사장 =시장접근에 있어서도 차별적 대우가
심하다.

특히 신약품의 한국시장 진입은 매우 어렵다.

발기부전증 치료제인 비아그라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미국은 물론 이미 유럽에서 생산및 판매 허가가 났다.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까지 공식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현지 생산을 위해선 1년이상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판매가 지연될 경우 한국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비아그라 구입을 위해 많은 외화가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지 않은가.

불법 수입품도 판을 치고 있다.

<> 사회 =김대중 정부의 개혁방향과 의지에 대해 외국인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것 같다.

그러나 개혁프로그램의 실천에는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개혁프로그램에 대해 몇점을 줄수 있는가.

<> 이 사장 =기본 아이디어와 취지만을 보면 "A"를 줘야 한다.

그러나 실천점수는 "C"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 스미스 사장 =같은 생각이다.

<> 제다 사장 =개혁프로그램자체에 대한 평가는 같은 생각이지만 실천
에서는 다소 낮은 C와 D의 중간 정도로 매기고 싶다.

<> 사회 =세사람 모두 한국이외의 해외시장에서 오랫동안 경영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사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 스미스 사장 =아시아 유럽 미국 등 30여개국에서 일을 해봤다.

한국은 사업하기 가장 힘든 곳중 하나였다.

굳이 따진다면 하위 10~20%에 포함된다.

특히 시장접근부문이 가장 어렵다.

관료주의도 문제이다.

때때로 반외국인 정서도 곤혹스럽게 만든다.

<> 이 사장 =5개국에서 근무했으며 12여개국과 함께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데 한국은 역시 사업환경이 가장 열악한 나라중 하나이다.

이해하기 힘든 사업관행, 부정부패 등이 문제이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지켜야할 사내윤리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한국내 사업관행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 애로를 겪고 있다.

한국에서는 많은 경우 얼마나 많은 인맥을 갖고 있느냐가 사업성패의 관건
이 되고 있다.

<> 스미스 사장 =일반적으로 사업을 할때 영향을 미치는 몇몇 중요한
요인들이 있다.

그동안 동양과 서양에서 근무한 경험을 비춰 봤을때 이들 요인들이 두
지역에서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무엇보다 법(law)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다.

다음은 논리(logic)이고 그리고 마지막이 인맥(relationship)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정반대였다.

인맥이 최우선 순위에 올라있다.

다음이 논리고 마지막이 법인 것 같다.

<> 사회 =한국에서 법대로 하자는 말은 곧 최악의 선택을 의미한다.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가 비난을 받는 것도 지나친 인맥 중시경향
때문인 것 같다.

<> 제다 사장 =한국민이 국수적이라고 지적했는데 다소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미국 등 어느 나라에서도 그런 경향이 조금씩은 있다.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다.

다만 그것이 전통과 문화에 뿌리를 깊이두고 있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고
끝까지 고집하면 곤란하다.

전통과 문화에 대한 존경심은 갖되 시대 흐름에 맞게 바꾸는 지혜가 필요
하다.

<> 사회 =그렇다면 한국시장의 매력은 무엇인가.

<> 이 사장 =먼저 무궁무진한 시장 잠재력을 꼽겠다.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 스미스 사장 =유능한 인력들이 풍부하다는 것이 강점이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근로자들의 근면성도 마음에 든다.

<> 제다 사장 ="아시아적 가치"가 외환위기의 원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회사에 대한 근로자들의 충성심은 높이 살만 하다.

<> 사회 =외국기업 입장에서 봤을때 한국 제약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
은 무엇인가.

<> 이 사장 =무엇보다 차별적 대우와 시장진입규제가 심하다.

일례로 수입약품의 대부분은 보험약가리스트에 등재조차 돼 있지 않다.

따라서 병원에서 수입약품을 처방한 다음에 의료보험조합에 약값을 청구
하기 위해선 수입약품 구입가격을 증명하는 서류를 일일이 제출해야 한다.

이같은 번거로움 때문에 많은 병원들이 수입의약품 사용을 기피한다.

수입약품의 시장진입을 막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다행히 보건복지부가 내년 7월부터 수입약품도 보험약가리스트에 등재시킬
계획이라고 밝혀 고무적이다.

수입의약품에 대한 차별규정은 제약산업 발전과 국민보건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에는 4백여개 제약회사와 2백여개의 공장이 있다.

시장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

게다가 현행 약가제도상 신약의 가격은 G7국가보다 30%가량 낮은 반면,
기존 약품들은 오히려 높다.

현재 전세계에서 기술면에서 앞선 20대 다국적 제약회사의 전체
시장점유율이 20% 미만인 곳은 한국뿐이다.

의약품 유통시장의 난맥상도 문제다.

많은 병원들이 환자에게 효과적인 약보다 많은 이익을 낼수 있는 약을
선호한다.

<> 스미스 사장 =그런 규제와 관행이 한국의 제약회사들로 하여금 새로운
의약품개발에 등한시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 약품을 복사해 모방약품을 만들어 보험약가리스트에만 등재시키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어느 누가 오랜 시간과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신약품을 개발하겠는가.

신약품과 모방약품의 가격 차이가 10%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은 R&D에
대한 투자를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 사회 =결국 국제적인 관행과 규정을 하루 빨리 도입하는 것이 개혁을
가속화할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 스미스 사장 =국제적 관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은 의약품 등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비아그라의 경우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약품의 경우 이미 국제개발프로그램을
통해 여러차례 임상실험을 거쳐 안전성과 약효가 입증된 제품인데도 불구
하고 한국내 판매를 위해선 또 다시 임상실험을 해야 한다.

신제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평균 3년이상 걸린다.

의약품개발을 위한 국제프로그램에 한국의 공신력있는 연구기관들이 함께
참여해 정보를 공유할 경우 굳이 국내에서 따로 임상실험을 거칠 필요가
없다.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허가임상실험외 다른 실험을 할수 없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당연히 한국의 연구개발 인프라도 낙후될 수 밖에 없다.

<> 이 사장 =신약품 판매가 3년간 지연될 경우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를 반문하고 싶다.

특정 질병에 효능이 있는 약이 있는데도 이같은 비효율적인 법제도 때문에
환자들의 질병이 더 악화되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른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사회 =한국 제약업계의 연구개발(R&D) 투자규모는 외국업체와 비교했을때
어느 정도 수준인가.

<> 스미스 사장 =한국 제약업계는 매출의 평균 5%를 R&D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화이자의 경우 매출의 18%인 약 23억달러를 매년 R&D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 제다 사장 =순수 신약품개발만 따진다면 한국 제약회사들의 R&D 투자
비율은 매출의 5%에도 못미치지 않나 싶다.

<> 이 사장 =MSD는 매출의 12%인 20억달러를 신약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새로운 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대체로 15년이 걸린다.

개발비도 평균 5억달러나 소요된다.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제약회사들도 매출의 5%미만을 R&D에 투자하고 있으니
국제 경쟁에서 뒤지는 것은 당연하다.

<> 사회 =마지막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충고나 조언을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 스미스 사장 =여러번 강조하지만 국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관행이나
규정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

세계적인 회사들은 국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룰이 적용되고
있는지 항상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흐름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면 변화를 적극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 제다 사장 =그래야 한국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 이 사장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국내에 진출한 모든 외국기업들이
동등한 "파트너"로 일하고 싶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같이 협력하고 노력하는
파트너이길 원하고 있다.

모두가 승리하는 이른바 윈-윈전략도 그같은 파트너십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 정리 = 김수찬 기자 ksch@ 조정애 기자 jch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