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한일은행이 최종 합병에 합의하기까지는 몇번의 고비가 있었다.

이관우 한일은행장과 배찬병 상업은행장이 처음 합병을 논의한 것은 지난
5월초.

연세대 상대 동기동창인 두 행장은 이후 두서너차례 만나 합병원론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두 은행이 외자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금융감독위원회도 이를
승인할 것처럼 비쳐진 지난달 합병논의는 유야무야됐다.

합병논의가 급진전된 것은 이달중순.

금감위가 "외자유치 승인불가"와 "자발적 합병"을 강력히 권고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두 행장은 행장직속의 "합병추진팀"을 각각 설치, 외부와 연락을 차단한채
합병을 논의해 왔다.

두 행장은 2~3일에 한번꼴로 만났다.

또 사실상 "합병사령탑"인 이헌재 금감위원장에게 추진상황을 수시로
보고했다.

지난 28일엔 전철환 한국은행총재에게도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대략적인 골격이 잡혔다.

합병은행의 등기를 상업은행으로 한다는데 쉽게 합의했다.

합병은행이름으로 외국의 사례를 본떠 "한일상업은행"으로 하거나 제3의
이름으로 한다는데도 이견이 없었다.

초대행장과 전무및 임원숫자에도 쉽게 의견접근을 보았다.

문제는 합병비율.

한일은행은 대등합병을 주장한데 비해 상업은행은 대등합병은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두 행장은 결국 1대1로 하되 자산부채실사를 통해 확정한다는데 합의했다.

이를 전해들은 상업은행 일부 간부들이 "대등합병은 곤란하다"고 강력히
반발하기도 했다.

합병의 마지막 고비는 30일.합병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은행 노조는 강력
반발했다.

특히 상업은행노조는 "밀실합병에 반대한다"고 펄쩍 뛰었다.

이 과정에서 배찬병 행장은 "순수한 마음을 몰라준다"며 사표를 제출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결국 임원들의 설득으로 오후 늦게 사의를 철회한 배 행장은 노조를 설득
하는데 성공했다.

이에따라 두 은행의 합병발표는 31일로 잠정 결정됐으며 두 행장은 이날
밤늦게까지 리허설을 가졌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