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이 구조조정의 몸살을 앓고 있다.

이른바 향토장학금으로 불리는 부모들의 학비지원이 중단되면서 고시생들이
짐을 꾸려 "낙향" 또는 "하산"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름방학이면 서울로 올라와 학원을 다니고 시험정보를 얻어가던
지방대생들도 올해는 예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고시촌은 그야말로 공황을
방불케하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높은 곳에 위치한 낡은 고시원일수록 더하다.

비교적 고지대에 자리잡은 D고시원의 주인 오모씨는 "방 30개중 10개정도
밖에 차지 않았다"며 "그나마 물가가 하도 올라 한달에 30만원을 받아도
식대 전기세 등을 빼고 나면 남는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재학생의 30%가량이 각종 고시준비에 매달리고 있다는 서울대도 마찬가지.

도서관에서 두터운 종이를 책상 양쪽으로 쌓아 올리고 고시준비중임을
과시하는 학생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지난봄부터 창의적인 대학을 만들기 위해 고시생들을 도서관에서
추방하자는 분위기가 일고 있어 고시생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양극화 현상과 "눈높이 낮추기" 현상도 IMF이후의 고시촌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30대 초반의 고시생 박모씨는 "고시촌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공부방을 월 10만원짜리 독서실로 옮기고 학원수강 대신
녹음테이프를 듣는 학생들이 늘고있는 반면 부유한 학생들은 일산 벽제
남양주 등지와 같은 공기좋고 시설좋은 고시촌으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시생 윤모씨는 "사법시험의 경우 1차시험에 4번 떨어지면 4년간
응시기회를 주지 않는 제도가 생긴 다음부터 법무사 감정평가사 등으로
한단계 낮춰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고시촌 인구의 감소는 이들을 주고객으로 해온 인근 상점이나 학원의
경기에도 연쇄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

고시관련 서적을 전문취급하는 책방은 매출이 35~50% 급감했다.

고시학원도 10~30% 수강생이 줄어들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학원들은 고시원과 연계해 하숙비를 깎아주고
단체수강생에게는 특별 할인혜택을 주는 등 불황타개에 나서고 있지만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같다는게 업자들의 설명이다.

고시촌이 위치한 속칭 "녹두거리"의 주점과 음식점도 30~40% 손님이 줄었다.

H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38)씨는 "술먹고 흥청대던 사이비 고시생들이
크게 줄었다"며 "먹고 살기 힘들어 그런지 고시생들을 격려해주던 친구나
친척들의 모습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밝혔다.

웬만큼 공부하려면 한달에 80만원은 들어가는 고시준비.

IMF 충격파는 고시촌의 여름을 한랭전선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 정종호 기자 rumb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