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상황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그동안 흔히 얘기해 오던 "제2의 위기"로 접어드는 조짐이 엿보인다는
인식이다.

11일 아시아 금융시장의 모습은 이런 우려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엔화 속락->위안화 절하->제2의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첫 장면을 보여
주는 듯한 상황이었다.

그 출발점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엔화속락이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오던 달러당 1백40엔선이 이번주 초 무너지자
하락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젠 1백42엔선 마저 넘어섰다.

이 기세대로라면 달러당 1백50엔선 붕괴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닥칠 전망
이다.

엔약세 저지에 나서야 할 미국과 일본은 여전히 "립 서비스"에만 그치고
있다.

미.일 양국은 "과도한 엔 절하에에는 단호히 대처하겠다"면서도 정작
행동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미.일의 이같은 태도에는 각각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달러강세가 가져다주는 "인플레 압력 완화"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또 일본은 엔약세에 의한 수출경쟁력 강화로 경기부진을 탈출해 보려고
하고 있다.

사실상 엔화하락을 용인하기로 합의한 것이나 다름 없다.

문제는 엔화가 무너질 경우 중국 위안(원)화가 버티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국정부는 이날도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위안화를 절하하지 않는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대변인은 일본정부에 대해 "엔화 방어를 위해 강력한 조치를
강구하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그만큼 중국의 사정이 다급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23개월만에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이런 싯점에서 중국은 최근 4,5월 두달 연속 외환보유고를 발표하지 않아
의혹을 사고 있기도 하다.

일본경제는 25년만의 2분기 연속 마이너스성장이라는 질곡에 빠져 있고
이젠 싱가포르와 대만까지 위기의 영향권에 들어온 상황이다.

이미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상황은 더 볼 것도 없다.

만일 엔화가 계속 떨어지고 위안화까지 들먹거린다면 상황은 "최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중국이 얼마나 버텨 주느냐, 미국과 일본이 어느 시점에서 엔화하락 저지에
나서느냐가 이제 관심의 초점이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