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와 유엔의 전면 무기사찰 합의로 걸프전 재발사태는 일단 모면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라크 모두가 자기 명분을 챙겼다는 분석에서다.

미국은 이번 합의로 국제적인 반대여론 속에서 추진해 온 ''대 이라크 무력
공격계획''을 체면 손상없이 수습할 수 있게 됐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등 미국 관리들은 공격을 앞두고 국제적인
지지를 얻으려 노력했지만 실패했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중 영국만 미국을 지지했을 뿐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이
모두 등을 돌렸다.

아랍국가들의 반응은 더욱 냉담했을 뿐 아니라 반미시위가 연일 계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대 이라크 공격을 감행할 경우 우방국간 관계가
악화될게 분명했다.

따라서 미국은 아난과 후세인간의 합의가 ''대통령궁에 대한 무조건적
무기사찰''로 해석될 만한 여지가 보이면 이를 기꺼이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은 또 걸프해역에 병력을 증파시켜 이라크를 굴복시켰다는 ''힘의 외교
승리론''을 펼 근거도 마련했다.

이라크측으로서는 미국과의 대치상황을 통해 자국의 문제점을 국제사회에
충분히 알리는데 성공했다.

이라크는 90년 쿠웨이트 침공이후 유엔으로부터 받고 있는 제재조치를
해제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특히 경제제재로 인해 국민들이 도탄에 빠졌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일 이라크의 석유수출물량을 6개월간
52억달러 어치로 종전보다 2.5배 늘려주기로 합의했다.

이라크는 또 이스라엘과 아랍국가에 대한 미국의 이중 기준 문제를
설파함으로써 아랍권에 반미감정을 증폭시켰다.

한편 이번 합의는 석유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유가의 추가약세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된다.

23일 도쿄시장에서는 합의소식에 따라 서부텍사스중질유(WTI)선물값이
지난주말에 비해 장중 배럴당 0.61달러 하락한 15.63달러에 거래됐다.

시장관계자들은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됐고 이라크가 수출물량을 늘리게
되는 등 공급과잉요인이 넘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이 합의 내용에 반대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이 합의내용에 불만을 가질 경우 아난 총장과 유엔에 책임을 떠넘기고
대 이라크공격에 다시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유재혁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