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기업정책의 틀이 인위적인 경제력집중 억제에서 시장경제원리에
기초한 자율규제방식으로 바뀐다.

비상경제대책위와 정부가 최근 대기업정책의 중심축이었던 출자총액제한제
도를 전면 폐지, 사실상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기업정책이 직접적인 규제에서 간접규제로 전환됨에 따라 기업들
은 계열사간 출자를 통해 다각화든 전문화든 기업의 특성에 맞게 경영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다 출자총액제한 폐지는 계열사의 출자를 통해 대기업들간 사업교환
을 가능하도록 해 빅딜을 간접지원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
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견제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과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이라는 양날의 칼을 휘둘러 왔다.

계열사간 출자총액한도를 순자산의 25% 이내로 제한해 무분별한 기업확장에
제동을 거는 한편 계열사간 지급보증도 제한, 계열사의 신용으로 손쉽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와 사업을 확장하는 기업경영 관행에 제동을 걸어
왔다.

정부와 비대위는 그러나 사외이사제 도입이나 소수주주권의 행사요권 강화
등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견제장치가 마련됨은 물론 내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인수합병) 규제를 대폭 완화한데 맞추어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더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 이를 폐지하기로 했다.

즉 시장경제원리에 부합되지 않는 인위적인 규제수단은 지양하는 동시에
적대적 M&A 허용에 따른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을 없애겠다는 의도에서다.

정부의 이같은 정책기조 전환은 기업들이 더이상 주력사업 이외의 분야에
무작정 진출하기 어렵게 됐다는 경영환경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과거처럼 외형만 보고 금융기관들이 기업들에게 무작정 대출해 주지도 않게
된데다 기업들 스스로도 외형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 경영패러다임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와 비대위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차입경영에 의한 부실화를 막고
업종 전업화를 촉진하기 위한 방편으로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에 대해서는
가산금리를 물리는 한편 공정거래법상의 과징금 부과라는 이중의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한편 정부와 비대위가 출자총액제한은 없애는 반면 순수지주회사의 허용은
장기과제로 검토하기로 결론을 냄에 따라 앞으로 기업지배구조의 틀을
어떻게 설정해 나갈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김당선자측은 오는 6월 상법개정을 통해 누적투표제를 도입하고 지배주주를
자동적으로 이사로 간주하도록 하는 등 그룹 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한 법
개정작업을 준비중이어서 기업지배구조의 재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정위는 또 출자총액제한의 폐지에 따른 기업의 무분별한 다각화를 견제
하기 위한 장치로 기업결합기준 등을 강화하는 등 보완책을 준비중이다.

아무튼 정부의 대기업정책은 직접적인 규제에서 독과점에 따른 경쟁제한에
대한 규제 강화 등 간접적인 규제방식으로 전환함에 따라 기업경영의
자율성이 상당폭 강화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영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