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외채협상이 비교적 유리한 조건으로 타결된데는 JP모건을 따돌리고
시티은행을 앞세운 우리 정부측 협상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JP모건 등 국제투자은행들은 한때 미국 재무부의 지원을 배경으로 상당히
고압적인 조건들을 내세웠지만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시티 체이스맨해튼 등
우리측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상업은행들에 주도권을 빼앗겨 버렸다.

협상대표단은 JP모건안을 협상테이블에서 배제하기 위해 다양한 우회전술을
구사했다.

우선 협상초 JP모건의 독주에 불만을 갖고있던 유럽및 일본계 은행들을
차례로 순방, 국제금융시장에서 JP모건을 고립시켰다.

정인용 국제금융대사가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의 주요 금융기관을 방문한데 이어 김우석 재경원 국제금융국장
도 15일부터 16일까지 일본에 머무르며 현지금융기관에 외채의 원활한 만기
연장을 당부했다.

여기에다 임창열 부총리는 존 리드 시티은행장과 거의 매일 연락을
취하면서 이번 협상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이 때문에 존 리드 은행장은 지난달말 직접 유럽은행들을 찾아다니며
우리측 입장을 대변하는 열성을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6일 방한한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을 만나 JP모건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한 것도
큰 보탬이 됐다는 지적이다.

김당선자를 만나고 난 뒤 미국 재무부의 공식적인 논평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같은 정지작업을 거쳐 지난 21일 제1차 협상장소도 우리측이 원했던 대로
뉴욕 시티은행 본사에서 열렸다.

이날 국회에서는 금융기관 외채에 대한 정부의 추가지급보증(1백50억달러)
동의안이 통과돼 협상단의 마음을 가볍게 해줬다.

<>.이번 협상의 최대 고비이자 하이라이트는 최종일인 28일 오후2시께
시작된 마지막 금리 담판.

샌드위치 등으로 간단히 점심을 들고 오후 협상이 속개되자마자
체이스맨해튼 은행측 참석자가 "1~3년 연장, 1년의 경우 리보+2.25%, 2년
짜리는 리보+2.5%, 3년은 리보+2.75%"라는 수정안을 전격 제시.

체이스측은 이 금리안에 대해 "1백여개 채권은행들의 참여를 최대한으로
이끌어 내려면 이 정도 금리가 아니고는 안된다"며 "이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우리측도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

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 도쿄미쓰비시은행, 노바스코시아은행(캐나다),
홍콩상하이은행(영국) 등의 대표자들이 돌아가며 체이스의 수정안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하고는 한국 협상단측에 "본국과 협의할 시간을 주겠다"며
휴회를 제의하는 등 양동작전.

이에 정덕구 실무협상단장은 이같은 상황을 임창열 부총리에게 즉각 보고
했고 새벽에 전화를 받은 임부총리가 다시 "윗분들"과 논의 과정을 거쳐
오후 7시30분(한국시간 29일 오전9시30분) "그만하면 수용해도 좋다"는
재가를 전했다는 후문.

<>.금리 협상의 첫 고비는 26일의 3차 협상때였다고.

한국측은 이날 "리보+2% 미만"을 첫 협상안으로 제시했고 이에 채권단측은
"리보+3%이상"을 주장.

이후 28일 최종 타결때까지 5,6차례에 걸쳐 상호간에 수정안이 오갔는데
양측은 매번 수정안을 내놓을 때마다 평균 20bp(0.2%포인트)씩을 변경해
나갔다는 것.

한국 협상단은 협상 초기 "시장 금리 수준"을 주장하며 리보+4%이상의
카드를 띄웠던 채권단측에 맞설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뉴욕지점 관계자들을 총동원, "한국에 가장 유리한 시장 금리"를 찾아내느라
소동을 벌였다는 후문.

한은과 산은 실무자들은 우리측 입맛에 맞는 "리보+2% 미만"의 금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한국과 국가신용등급이 비슷한 터키 등이 국제시장
에서 조달하고 있는 금리까지 동원했다고.

<>.이번 협상의 "일등 공신"으로 꼽히고 있는 마크 워커 변호사의 기용은
정부쪽에서조차 성과를 확신하지 못했던 기대 이상의 수확이라는 자평.

워커 변호사는 지난해부터 한국 정부의 법률 용역을 맡아 온 미국
클리어리 고틀리브 법률회사 소속 파트너로 작년 신라호텔 회의때 "군계일학"
의 활약을 했던 것이 재경원 고위 관계자들 눈에 띄어 이달초 뉴욕 외채협상
법률 고문으로 전격 발탁됐다는 것.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