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의 일방적인 한.일어업협정 파기결정에 대응해 우리정부도
일본영해 인접수역에서의 어업자율규제를 철회할 방침이어서 대한해협의
파도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로써 지난 96년 5월이후 갖은 곡절을 겪으며 계속돼온 한일어업협정
개정협상은 완전히 결렬됐다.

우리는 일본정부의 이같은 일방적이고 비우호적인 행동에 대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며 특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일본정부의 파기결정 재고를
강력히 요청한다.

우선 이번 파기결정은 그동안 두나라 정부실무자들이 여러차례의 협상을
통해 상당부분 의견을 수렴한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협상노력과
부분적인 합의 성과마저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동은 지극히 비우호적이며
두나라의 선린우호관계를 크게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96년 5월에 시작된 개정협상은 배타적 경제수역(EEZ)경계획정협상
및 독도영유권문제 등과 맞물려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일본측이 EEZ경계획정과 어업협정을 분리해 추진하자는
이른바 "잠정수역안"을 들고 나온뒤 이후 일본측의 잇따른 한국어선나포로
갈등이 증폭되기도 했지만 우리측이 한.일.중간의 일괄타결이라는 처음
주장을 양보해 잠정어업수역의 동쪽 한계선외에는 대체로 합의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일방적으로 협정파기를 통보해온 것은
불순한 저의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더해 일본정부의 한일어업협정 파기결정이 시기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때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문제다.

특히 어업협정이 일방적으로 파기되면 앞으로 1년동안만 효력을 갖도록
규정돼 있으므로 지금 시점에서 협정을 파기하고 한국의 차기정부가 정식
출범하면 다시 협상을 하겠다는 일본측의 입장은 단기외채를 연장하는데
일본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한국측의 약점을 이용해 배수진을 치고 우리측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되며 이는 지극히 비신사적인 태도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이번 어업협정 파기결정이 일본의 국내정치사정에
영향을 받았다고 의심된다는 점이다.

잠정수역의 동쪽한계선 결정이라는 기술적인 문제만 남겨놓은 협상의
막바지국면에서 일방적인 협정파기라는 극한적인 카드를 선택한 배경에는
어민과 수산업계의 지지를 고려한 집권 자민당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얘기된다.

그동안 일본정계는 96년3월 연립 여3당이 "1년내 한일어업협정을
개정토록" 시한을 못박은데 이어, 97년9월에는 아예 "현행협정 파기통보"를
사전 결정하는 등 일방적으로 협상타결을 종용해 왔다.

우리는 일본 집권당이 지난 65년 한.일국교정상화 근간의 하나로 30년이상
한.일어업관계를 규율해온 한.일어업협정의 파기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일본과의 문화교류확대 및 일본 천왕의
방한여건 조성 등 두나라간의 우호증진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표명한 판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일본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요망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