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국제채권은행단이 한국에 제시하고 있는 외채연장 조건은 멕시코 등
과거 외환위기를 겪었던 국가들에 대한 지원조건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남미국가들에 대해선 외채 원리금 경감을 포함해 실질적인 지원을 해준
반면 한국에겐 과거보다 오히려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등 위기를 이용해
이윤챙기기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이다.

외채전환 방식의 이같은 차이는 89년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국가들의
외채구조조정 협상에서 제시된 이른바 "브래디 플랜"과 현 대한채권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JP모건안"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89년 미재무장관인 브래디가 중남미 외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브래디플랜은 대부분 정부빚인 중남미국가의 채무를 일정액 탕감하는 동시에
나머지는 이들국가의 정부가 발행한 장기 채권(브래디채권)으로 돌려받자는
것이었다.

미국은 심지어 자국 국채를 담보로 브래디채권의 상환을 보장해줬다.

반면 JP모건안은 민간은행의 채무를 국채나 정부지급보증 채무로 바꿔
전액 상환받으면서도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 사례로는 지난 82년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했던 멕시코의
경우 국제채권은행단은 90년3월 중장기채무 4백85억달러에 대해 채무조정
협정을 맺으면서 1백44억달러의 채무원금을 탕감해줬다.

전체 외채가운데 1백96억달러는 할인채로 전환하면서 원금 68억달러를
탕감하고 23억달러에 달하는 이자를 경감해줬다.

또 2백25억달러는 고정금리 6.25%, 30년만기의 동일액면가 채권으로
맞바꿈으로써 원금 76억달러, 이자 27억달러 등을 경감해줬다.

필리핀도 89년 은행채권단과 69억달러에 달하는 채무조정 협정을
체결하면서 9억달러의 원금탕감과 5백만달러의 이자 경감 혜택을 받았다.

필리핀은 이와함께 7억1천만달러의 신규자금을 8년거치 15년만기의
호조건으로 제공받았다.

이밖에 코스타리카도 89년 채권은행단과의 협상을 통해 18억달러의 채무중
11억달러의 채무를 탕감받았다.

물론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의 경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아직
모라토리엄 상황까진 가지 않은 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이 사실상 모라토리엄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타국
민간은행에 돈을 꿔주고 받지못한 책임을 공동으로 져야할 외국은행들이
오히려 정부보증으로 민간채권에 대한 원리금 전액은 물론 더많은 이자까지
받으려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강현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