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한파로 인해 환율이 치솟기 시작하던 지난해 12월 어느날 급히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IMF 경제체제에서 많은 업체들이 쓰러질 것이며 이를 염려한 해외 바이어들
은 거래선이 이상이 없을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대만이나 중국, 또는
한국의 제2,제3업체를 찾는 등 이탈이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인공위성 수신장치, 에어컨트롤러, 공장용 에어컨 등을 연간 2천만달러이상
수출하고 있는 당사로서도 영국 이스라엘 등 5년이상 거래해 온 고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다.

또한 한국의 외환사정으로 인하여 DA, DP, LC, 유전스 등 모든 연지급방식
거래시 은행에서 선적 후 즉시 네고를 할 수 없는 사정 등을 설명하고,
가능하면 현금을 송금해 주고 모든 LC는 확약된 일람불 신용장이라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서였다.

환율이 조금씩 오르면 바이어측에서 즉각적으로 눈치를 채지 못하나,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어 뉴스의 초점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달러대 원화 환율이 50%이상 폭등하자 거래선들은 가격인하 압력을 해
오고, 이에대해 여러가지 사정을 설명하며 가격인하 불가입장을 고수했으나
현실적으로 가격인하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바이어들과 이런저런 문제점을 해결하느라 1주일이 말그대로 화살같이
지나갔다.

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

나라경제가 파탄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순례 라는 이름의 한국인 단체
여행객이 대합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벼르다가 처음으로 순례행렬에 나서게 되었고,
또한 계획 자체가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던 것이어서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나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우리 근로자 모두는 다시한번 근검절약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열심히 일하고,사업주는 벌어들인 외화로 부가가치 높은 제품 개발에 적극
힘써 국가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그렇게되면 우리 국적비행기도 한국 물건을 구매하기 위한 외국바이어들로
가득차고 또 수많은 기업의 사장 간부들이 자사의 물건을 수출하기 위하여
보잉747 비행기의 4백20석을 모두 채울날도 그리 멀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명구 < (주)헵시바 사장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