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대폭락행진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해외자금조달 계획에
초비상이 걸렸다.

이에 따라 현대 삼성 LG 대우 등 대기업 그룹들이 뉴욕 런던 도쿄 홍콩
등지를 돌며 대규모 IR행사를 벌이거나 추진중이지만 그 성과는 미지수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기아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금융
시장이 안정을 회복하자 연말께부터는 해외 자금조달이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동남아 통화위기에 휩싸인 국내 증시는 전날 33.15포인트나
곤두박질친데 이어 토요일인 25일 또다시 22.44포인트나 폭락, 종합주가지수
는 548.47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일에 이어 닷새만에 연중 최저치를 경신한 것으로 지난 92년
10월 20일(545.45) 이후 5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해외 증권 발행을 끝내 연기하거나 포기한 상태고
그나마 기대했던 대규모 IR행사 역시 현지 투자자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는 등 기업자금조달계획은 예측 불가능한 표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LG그룹의 경우 해외자금 조달을 위해 지난 24일까지 홍콩 런던 뉴욕 등지
에서 해외 유력 투자기관의 4백여명을 초청, 대규모 기업설명회를 가졌다.

그러나 때마침 국내 증시가 폭락하고 S&P(스탠더드 앤드 푸어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하향조정하는 등 악재가 겹쳐 기대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에 참석한 LG그룹 관계자는 "3년째 맞는 기업설명회이지만 이처럼
반응이 냉담하기는 처음"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대우그룹은 최근 폴란드 자동차 현지법인의 라노스 생산기념식에 해외 유력
투자자들을 대거 초청, 기업설명회를 가졌는데 역시 성과는 기대를 밑돌았다.

현대그룹도 최근 종합기획실 재무담당자들이 홍콩 싱가포르 도쿄를 돌면서
주요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그룹의 해외 자금조달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
를 구했다.

그러나 현지 투자자들은 한국의 증시폭락과 정치상황 등을 이유로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현재의 낮은 주가수준을 감안, 로드쇼 준비까지
마무리한 현대자동차의 해외CB(전환사채) 발행 여부를 아직 최종 확정짓지
못했으며 다른 계열사의 해외증권 발행 일정도 연기할 것을 검토중이다.

현대는 내년 2월 그룹 차원으로는 처음으로 7~8개 계열사가 참가하는
대규모 해외 IR행사를 갖고 투자자들을 설득할 예정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11월까지도 해외자금 조달 시기나 장소를 명확히 할수
없다고 자체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내년초 가질 해외 그룹 IR행사와는 별도로 주요 투자자들을 개별적
으로 방문해 그룹과 계열사의 해외증권 발행에 협조를 구하는 "각개 격파형
IR"에 나서기로 방침을 정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기업들이 아무리 대규모 IR행사를 펼치고 투자자들의
설득에 나선다해도 국내 금융시장의 혼란이 거듭되는 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