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기 <선경인더스트리 중앙연구소 고문>

화공업계는 새로운 공정기술적용에 대단히 보수적이다.

오랜 운전경험을 통해 효율성과 경제성이 입증되지 않은 것은 일단
논외로 친다.

막대한 시설투자비가 한목에 들어 중도포기하는데 따른 손실이 큰
거대장치산업이기 때문이다.

신공정 개발에도 워낙 돈이 많이 들어 웬만해서는 엄두도 못낸다.

적어도 1백년 이상의 현장운전경험을 갖고 있는 일부 선진국 업체만이
이 분야의 원천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까닭이다.

화공분야의 원천기술수준과 역사는 비례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규모 화학공장 모두가 선진국에서 원천기술을 도입해 세운
것이며 기술료로 매년 수천억원 이상을 지불해야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선경인더스트리 중앙연구소 이면기(52)고문은 그러나 "원천기술수준=역사"
란 공식을 뒤엎은 인물로 꼽힌다.

그는 우리나라 처럼 화공산업 역사가 짧은 나라에서도 생산성과 경제성,
그리고 환경친화성까지 곁들인 원천공정기술을 개발할 수 있고 수출까지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보여줬다.

그는 지난해 6월 반응증류를 이용한 메틸아세테이트(MA)가수분해 공정개발
및 상업화에 세계 처음으로 성공했다.

MA는 폴리에스테르 섬유의 원료인 테레프탈산(TPA)및 폴리비닐알콜(PVA)
제조공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무색의 액상물질.

저가의 용매로 일부 쓰이기는 하지만 경제성이 없고 포집 또한 어려워
대기중에 방출되거나 폐수처리 돼 환경오염을 야기시키는 골칫거리이다.

그는 종전과는 달리 촉매반응과 증류가 동시에 진행되는 반응증류공정을
응용, 천덕꾸러기 MA에 새생명을 불어넣었다.

MA의 가수분해반응을 활성화, 메탄올과 초산으로 고효율 전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메탄올은 폴리에스터섬유를 만드는데 쓰이는 디메틸테레프탈레이트(DMT)의
원료로, 초산은 TPA공정의 중간용매로 필수적인 유용한 화합물이다.

그는 이 공정의 구현을 위해 기존촉매보다 활성이 5배이상 강한
이온교환수지촉매를 개발해 접목했고 최적반응이 일어나도록 장치를
꾸미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공정은 기존공정에 비해 반응수율이 2배이상 높은 99%에 달하며
반응시간도 5시간에서 1시간으로 짧은게 최대 장점이다.

따라서 투자비는 65%, 에너지소모량은 30%이상 절감할 수 있다.

이 공정기술은 이미 선경인더스트리의 기술공급선인 미국 이스트만
케미컬사에 수출되는 등 높은 경제성과 효율성, 그리고 환경친화성을
인정받고 있다.

MA는 현재 국내의 13개 TPA공장을 포함,전세계 1백여개의 공장에서
대량생성되고 있는데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여서 수출이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화공분야 원천공정기술의 독자개발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이다.

이 공정확립의 아이디어창출에서부터 파일럿플랜트실험, 상업생산설비의
설계와 건설, 그리고 시운전 등 상업화에 필요한 전공정이 1백% 자체기술과
노력으로 수행됐다는 점이 그렇다.

미국 아모코나 일본 미쓰비시 등 선진 외국업체들이 다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상업화에 실패한 고난도의 공정기술을 2년6개월이란 최단기간내에
완성한 것이다.

외국업체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은 촉매제조와 이를 반응기에 쌓는
팩킹기술뿐이다.

이 역시 쉽게 국산화할 수 있었으나 개발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외국기술에
의존했을 뿐이다.

그는 한단계 앞선 응용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메틸아세테이트와 에탄올을 트랜스에스테르화해 부가가치가 보다 높은
에틸아세테이트로 전환하는 공정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함께 원료소모량과 설비투자비용이 보다 적게 드는 새로운 TPA공정을
개발, 화공산업의 기술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