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씨는 자칭 "멀티내셔널"한 인물.

능숙한 독일어실력은 제껴놓더라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등도
여행에 지장없을 정도는 한다.

배낭여행도 어지간히 많이 다녔다.

산을 못타는게 흠이지만 지금도 배낭만 짊어지면 유럽이면 유럽, 미국이면
미국, 거칠것이 없다.

인형극단에 있었던 것도 "멀티내셔널"한 그의 일면.

경원대 재학시절 "넋"이라는 인형극단에 투신, 4년동안 활동했다.

인형극은 발상지인 북유럽 문화 자체를 이해하는 길이 된다.

남들은 비위에 안맞아 못먹는다는 일본식 장아찌도 잘 먹는다.

그녀는 이같은 "남다름"을 "환경"으로 설명한다.

국제 민간의료지원단체에 몸 담았던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항상 집안에
외국인이 끊이질 않았다.

당시 또래들이 알턱이 없는 파라과이사람들과도 놀았다.

때문에 "인 서울 매거진"이 버터냄새가 난다는 비판도 있지만 "세계화시대
에는 젊은이들의 관심도 세계적일 수 밖에 없다"고 태연한 반응.

앞으로의 꿈은 "인 서울 매거진" 발행부수를 50만부까지 끌어 올리는 것.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은 이에 비해 그리 급한 일은 아니다"며
프로기질을 보여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