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북한노동당 비서 황장엽씨와 그의 측근 김덕홍씨는 서울생활
사흘째를 맞아 심신 모두가 건강하고 안정돼가고 있다 한다.

지난 20일 숙소에 도착한 직후 황씨가 "필리핀에선 과연 서울에 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여기 오니 마음이 놓인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봐
국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돼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황씨의 귀순은 관점에 따라선 남북관계에 있어 6.25이후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장기간 북한의 핵심권부에 있었으므로 북한의 정치적.경제적
실상을 잘 알수 있고 북한의 최근 대남전략까지 비교적 소상히 알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그런 그가 가족을 남겨둔채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귀순했다는 사실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의 귀순동기나 "입국성격"등에 모호한 점이 없지 않다.

그는 도착기자회견에서 "나는 갈라진 조국의 한 부분을 조국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따라서 망명이나 귀순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주관적 생각이겠지만 객관적인 현실은 아니다.

서울대학교 전인영 교수는 그가 "한쪽을 버리고 한쪽을 택한 것은
아닌것 같다"고 분석했지만 그의 이 말은 객관적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관념론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황씨는 귀순전 "조선문제"란 논문에서 "북측도 평화통일에 대하여
말로는 떠들지만 철두철미 전쟁의 방법에 의거하려하고 있다"면서
"우리민족 앞에는 력사상 비극이 닥쳐오고있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 하므로 "이 엄중한 사실을 겨레에게 알리기 위하여" 북한을
탈출했다고 적고 있다.

그는 "전쟁에 대하여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민족앞에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범죄적 태도"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같은 의견은 우리 북한전문가중에도 많이 있으므로 우리에게
새삼스런 말은 아니다.

우리가 황장엽씨에게 기대하는 건 그가 갖고있는 북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전해 주는 것이다.

북한은 철저한 폐쇄사회이므로 우리가 북한 실정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측면이 많이 있다.

이를 알고 이에 대비하는 게 평화통일의 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어느정도 북한의 정확하고 구체적인 사실을 알려
주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