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그룹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선택했다.

작년말부터 끊임없는 부도설에 시달리던 삼미그룹은 지난 13일 삼미가
1차 부도를 낸 후 다음날 이를 겨우 막는 등 하루 하루를 아슬아슬하게
버텨오다 끝내 좌초하고 말았다.

삼미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 근인으론 특수강 경기의 오랜 침체와
2조원에 달하는 부채의 과중한 이자 부담이 꼽힌다.

여기에 최근 포철에 대한 북미법인 매각계획이 무산됐고 금융기관의 추가
지원이 중단된 점등이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게 정설이다.

우선 삼미는 특수강 경기의 장기침체로 1조9천억이란 눈덩이 부채를 떠안아
정상적인 경영자체가 불가능했다.

지난해의 경우만 금융비용이 2천3백44억원에 달했다.

그룹의 주력인 삼미특수강 매출(8천6백억원)의 30%정도를 금융기관에
이자로 갚아야 했으니 경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삼미특수강은 지난 92년이래 연속 5년간 적자행진을 면치 못했다.

이같은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삼미는 최근 창원에 있는 봉강및 강관공장
을 포철에 매각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삼미는 이들 공장의 매각대금으로 7천1백94억원을 받았으나 손에 쥐어
보지도 못하고 모두 부채 상환에 쏟아부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고도 1조2천억원 정도의 부채가 남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회사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설비를 매각함으써 담보물건이
사라진 삼미로서는 은행권의 추가대출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삼미 관계자는 "창원공장 매각으로 총 부채가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회사
매출액이 1조원에서 5천억원대로 반감돼 매출액 대비 10%의 영업이익을
내더라도 금융비용을 구조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삼미특수강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유원건설과 한보그룹의
잇단 부도로 자금운용에 여유가 없어져 삼미의 숨통을 조여 왔다는 분석이다.

특히 창원공장과 함께 포철에 팔기로 했던 북미법인의 처분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삼미의 좌초에 결정적 요인이 된것으로 보인다.

포철은 지난주 현지에서 벌인 북미법인에 대한 2차 실사결과 "인수곤란"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삼미그룹의 붕괴위기가 외부적인 요인에서만 기인한건 아니다.

무리한 해외투자와 설비증설을 추진한 삼미그룹 자신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는게 일반적 시각이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삼미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건 사실
지난 89년 북미지역의 특수강공장을 인수하면서 부터다.

삼미특수강의 1백% 단독투자로 캐나다의 아틀라스사와 미국의 알텍사를
인수한후 추가투자 자금으로 2억2천만달러를 증자한 것이 그룹 전체의
경영을 압박했다.

또 90년대 초 창원공장의 생산능력을 50만t 규모로 늘리기 위해 추진한
3천억원대의 설비투자의 경우도 곧 불어닥친 특수강경기 불황으로 큰 짐이
됐다.

북미공장은 인수 후에도 4년간 연속 적자를 냈으며 95년 한때 반짝했던
국내 특수강경기도 전반적인 경기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식어버려 그룹의
누적채무만 눈덩이 처럼 불어 났던 것.

어쨌든 올해로 창업 43년을 맞은 한국의 대표적인 특수강 업체인 삼미도
이제 재계의 무대 뒤로 사라져야 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차병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0일자).